Page 4 - 손상희 개인전 2024. 8. 21 – 8. 28 경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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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


            - 노출된 형상들과 은폐된 담화들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사물에 자연의 힘인 불과 중력, 그리고 흙이 서로 작용한 결과가 도기이다. 그러나 손상
            희의 도조에는 기존의 도자기가 보여주는 인공적 완벽성이 아니라 완벽함이 만들어낼 수 없는 일그러짐 내지
            는 불균형이 있다. 그 일그러진 아름다움은 인공성을 뛰어넘는다. 인공성을 뛰어넘을 때 빚어지는 형태상의
            긴장은 팽창해 폭발하려는 형태들과 그것을 붙잡는 흙들의 친화성에서 비롯된다. 과정상의 치열한 노동이나
            시공간적 서사가 간간이 노출되고 고요하고 침잠된 형태미가 드러나는 그의 작업 역시 인공성을 뛰어넘는 아
            름다움이 있다.


            노출된 형상들
            손상희의 작업은 점토를 이용하여 형태를 빚고 여기에 작가의 경험과 사유를 토대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가
            는 독특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필연적으로 불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태들은 각각의 존재감을 드
            러내며 태토나 유약의 물리·화학적 반응에 따라 깊은 미적 향취를 뿜어내며 예술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조형
            적으로 순수 조각의 자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작업은 기법적으로 전통 도자예술의 맥락과 부합된다. 작가
            는 공예의 실용적 요소보다는 도조(陶彫)라는 순수 미술에 작업의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자신의 조형 의식과
            미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한편 손상희가 선호하는 미적 모티브는 우선 바이올린과 같은 서양의 현악기들이다. 악기는 그 울림을 통하
            여 우리의 공감을 유도하거나 발언한다. 공간 예술인 미술과 시간 예술인 음악의 매칭은 그 자체로 시공간
            을 포괄하는 매력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손상희는 악기가 지닌 음악적 요소보다는 그 의미에 주안점
            을 두거나 악기가 지닌 조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방에서 반쯤 노출되거나 비정형화되어 굴곡진 형태
            를 보여주는 바이올린의 자태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관객에게 미적 향응을 제공한다. 안
            료 혹은 유약의 깊은 향취는 작품 표면에 흡착되어 시간성을 배태하거나 스스로 빛을 머금는가 하면 다시 반
            사함으로써 고고한 미적 정취를 발산하기도 한다. 이때 작품 표면은 전체 형태와 별개로 강한 ‘회화적 속성’을
            드러내며 미적 모더니티의 한 부분에 위치하거나 부조적 특성을 드러내며 전체의 형상에 일조하기도 한다.


            작품의 구조나 형태뿐 아니라 원본과 이미지, 상징적 은유, 추상화와 암시, 작업의 기능적 관점과 역설 등 관
            념적이고 입체적인 분석 단위들이 얽혀있고, 이의 관계성역시 모호하게 중첩되어 있다. 표현 언어도 기존의
            평면적이고 선형적인 해석을 넘어서, 인간적 삶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해석하고 노동의 흔적을 시간의 관점으
            로 풀어냄으로써 예술의 능동적인 가치를 전면화시키고 있다. 노출된 형상들은 분명히 악기의 일부분임을 표
            상하고 있으나 디스토피아적 아포칼립스(Apocalypse)를 연상시키는 암울한 형상이다가도 "감추지 않음"이
            라는 뜻에 어울리게 당당한 자태를 보임으로써 유토피아적 여명(黎明)을 암시하기도 한다.


            은폐된 담화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삶’ 혹은 ‘사람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각각의 악기들은 각각의 인간들처럼
            강한 개성을 보이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마치 서로 말을 걸거나 무심히 현상을 응시하는 존
            재들의 모습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지향하는 “코로나 시대의 인간상”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손상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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