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손상희 개인전 2024. 8. 21 – 8. 28 경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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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모더니즘을 통해 문화적 규범과 질서로 자리 잡은 사회적 기호와 상징체계가 주장하였던 가치들에 대
                          한 반어이자 해체이다. 이는 작가가 대학에서 시를 공부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천성이 규범적 가치들에 대하여
                          선뜻 공감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아틀리에에는 본래의 의미와 기능을 상실한 텍스
                          트와 이미지들이 자연사박물관의 화석처럼 박제화되어 있다. 그러나 상실된 의미와 기능은 새로운 미학적 가
                          능성을 잉태하며 또 다른 가치로 우리와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은유와 상징’이 손상희 예술의 보편적 특징이
                          지만 그의 작품이 시어(詩語)와 다른 점은 현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상은 본질에 앞선다. 진실
                          은 늘 가시적이거나 인지 가능한 것이다. 노출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작가의 표현 언어는 분명히
                          직선적인 것을 배제하고 있다. 예술로 진실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적 수단으로 작가는 덜 보여주는 것을 선택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보따리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작가는 아예 모든 것(진실)을 보따리에 꼭꼭 동여매 놓고 있다. 손상
                          희의 보따리는 동시대 미술담론에서 흔히 언급되는 유목(nomad)적 개념보다는 개인사적 경험 혹은 트라우
                          마와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기 보따리”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보자기로 싼 형상들이나 보따리 작업은
                          많은 내러티브를 함의하고 있다. 꼭꼭 싸맨 상자들에서 작가는 학창 시절의 흔한 추억보다는 ‘말 못할 경험’을
                          말하고 있다. 이는 추억을 소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통하여 추억을 억압하는 구도의
                          과정을 연상시킨다. 유사한 형태들의 연속적인 생산은 예술을 수단으로 한 자기 수양의 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손상희의 작업이 서로 유형을 약간씩 달리할지언정 궁극적으로는 ‘자기 모색’이
                          자 고백이며, 세계를 보는 작가의 시선이 형상을 통해 구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 내면의 영토를 구축
                          함에 있어 작가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줌과 아울러 대화를 제안하고 있다. 그것은 재현을 넘어선 실존, 그리고 서사성을 나타낸 순환적 구조와 함께,
                          무엇보다도 삶 자체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가득한 하나의 거대한 물질개념에서 추상적 개념체임을 암시하
                          는 접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내러티브가 아니다. 삶에 등장하는 모험, 질곡, 애증, 절망 따위의 극
                          적인 반전이나 비약보다는 차분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듯 조용하다. 상대방을 향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대나 기다림 등을 지난한 노동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까닭에 손상희의 일련의 작업은 극적 요소가 가
                          미된 드라마처럼 비쳐진다.

                          이상 손상희의 작업에서 우리는 세련된 예술가의 자기증식적 작품생산보다는 터프한 장인의 몰아적 노동의
                          과정을 떠올린다. 자기상실의 무아지경에 가까운 집요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그의 작업은 삶 자체가 자기를
                          놓아버리는 속에서 자기를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작가의 작업에 나타난 존재들이
                          서로 유형을 약간씩 달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탐색’이자 고백이며, 세계를 보는 작가의 시각이 익숙한
                          이미지들을 통해 구현된 것이라 여겨진다.





                                                                                    -  이 경 모(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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