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김소영 개인전 2024. 6. 5 – 6. 10 갤러리라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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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린 힘
내 미의식의 밑바탕에는 할아버지의 정원, 어머니의 수, 아버지의 6.25 체험담, 고군분투한 내 삶이 자리 잡고 있다.
연꽃 피는 연못이 있는 할아버지 집 마당에는 복숭아, 살구, 자두,배, 사과 등 과일나무가 많아서 여러 나무의 꽃들이 흰색에서
진홍색까지 서로 미세하게 다르다는 것을 어려서 알았고, 우리 토종꽃이 군락으로 피어 있어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을 즐길
수 있었다. 어머니는 수 놓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한 땀 한 땀 실이 겹쳐지면서 두루미 날개 무늬가 나오고 붉은 모란 꽃잎이
만들어지는게 어린 눈에 마냥 신기했다. 아버지는 6.25때 파출소장 신분으로 인민군 부대장에게 생포되었는데 할아버지께서
마을 사람들의 연명을 받은 탄원서(민중에 봉사한 경찰이라는)를 들고 가서 총살 직전에 풀려났다고 한다. 그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심을 잃지 않았었는지를 말해 주셨고, 전쟁 중에 어려운 사람들이 인민군쪽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있었기에 항상 사회의
기층 민중을 생각하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중고교 시절 미술 시간에 학교 옥상에서 멀리 보이는 북한산을 그릴 때, 먼 산들이 대체로 보라색으로 보이는게 이상했다. 꽃과
나무가 있는데 왜 빨강 초록은 안 보이고 보라색으로 보이는지 궁금해하다가 빛의 산란을 배우고 나서 맘 놓고 보라색을 쓸 수
있었다. 미술 시간에 잘 된 작품을 뽑아서 덕수궁 간이 전시장에서 전시할 때 내 작품도 있어서 그림에 관심과 흥미를 계속 가지고
있었다.
직장 다니는 동안 수업하고 집에 오면 가사일 하고 육아하고 맏며느리 역할하며 허덕이느라 그림 그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1인
4역을 하며 30여년을 살다보니 아버지가 말씀하신 기층 민중이 남이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33년간의 교직기간에 주로 언어로 생각과 느낌을 전달했기에 퇴직 후에는 그동안 계속 지니고 있던 그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꺼내어 시각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다 남들이 장관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화려한 꽃들을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무심코 보아서 눈에 뜨이지 않는 연약하고 하찮게 여겨지는 존재들이 지닌 내면의 힘을 표현하고 싶었다.
겨울 그늘진 바위에서 파란 형광색을 내며 자라는 이끼를 통해 척박한 환경에서도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을 응원하고 싶다.
난로에 불을 피우려고 버려진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불쏘시개로 쓰면서 굵은 장작 못지 않게 잔 가지같이 약한 것도 긴요한
존재라는 것을 담아내고, 넓은 차밭에 온종일 허리 굽혀 찻잎을 일일이 손으로 따내는 분들의 수고 덕분에 편히 차를 마시면서
분홍 작업복 입은 그분들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된 성벽 아래에 피어난 산국화가 성 밑 돌 틈 균열을 뿌리로
메꾸고 지탱하는 모습에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를 힘들여 떠받치고 있는 이들이 연상된다. 제주 오름의 무성한 억새들은
교목같은 단단한 줄기가 없지만, 서로 기대서서 거센 바람에 잘 버티고 있다. 온갖 고난을 이겨온 친구들이 서로 연대하여 힘이
되는 모습이 겹친다. 한여름 땡볕 속에서 작은 청개구리 두 마리가 수련 잎사귀 그늘 아래 편히 쉬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도
자연처럼 약한 이들을 더 품어가며 살아가면 좋을 것 같다.
그림으로 응원하는 이 존재들은 나 자신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여성에 대한 불합리한 의식과 제도가 제대로 개선되지 않아,
출생률 세계 최하인 나라에서 여성으로 살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것을 그림으로 담으려면 마음이 힘들어서 즐겁게 그릴 수가
없었다. 대신 나를 포함한 작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들이 지닌 힘과 가치를 자연과 사물에서 찾아서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앞으로도 꾸준히 해나가려고 한다.
- 김 소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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