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 - 전제창 개인전 8. 13 – 8. 18 갤러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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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심상(無爲心狀)의 먹물 산수 : 전제창(全濟昌)의 작품세계





           예로부터 산수(山水)는 자연을 대표하는 자연환경의 중심을 이룬다. 마루와 골로 이어지는 산의 정상과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있
           어 산과 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만약 산에 물이 없다면 생기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의 형세와 물의 흐름을 주된
           자연경관의 소재로 삼아 이를 수묵으로 그린 그림이 전통 산수화이다. 그런데 작가 전제창의 화풍은 역사적으로 고대 중국에서
           출현한 이후 후대에 널리 알려진 바의 산수화도 아니거니와, 삼국시대 이래 중국에서 유행한 다양한 화풍을 수용하되 이후 우리
           에 고유한 양식으로 발전시킨 한국의 전통 산수화와도 거리가 멀다. 그는 자신만의 매우 독특한 기법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또한, 채색을 가하지 않고 먹색만으로 먹의 농담을 이용하여 모든 색채의 효과를 나타내는 수묵화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지만
           전통 수묵화도 아니다. 작가 전제창의 이력을 살펴보면, 서울예대와 추계예술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1986년 동숭동 대학로에서
           거리축제 기간 중에 철사로 다양한 동세의 인체조형물 수백점을 만들어 참여하게 되었으며 특히 인체의 움직임과 형태를 매우
           단순화하여 표현하였다. 이 가운데 108점을 선별하여 ‘화석이 된 인간-입체설치’라는 주제로 동숭동의 소금창고에서 첫 개인전
           (1987)을 갖게 되었다. 그 후 지금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전시(2004)를 비롯해 개인전 15회 및 그룹 ‘농’전, 서울아트쇼, 한국
           현대미술작가 100인 초대전, 마니프 등 다양한 국내외 전시에 초대되어 자신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꾸준하게 정립하고 있는 역
           량을 갖춘 작가라 하겠다. 이 글에서는 작가의 독특한 표현기법에 기반한 그의 먹물 산수를 무위심상(無爲心狀)의 관점에서 다루
           어 보고자 한다.

           작가 전제창은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먹물로 그린 산, 곧 먹물 산이라고 말한다. 왜 먹물일까를 생각해 본다. 물론 동양화의 많은
           재료 가운데 먹은 수천년에 걸쳐 오랫동안 살아남아있기에 질긴 생명력이 뚜렷하다고 하겠다. 단지 재료에 그치지 않고 먹이 지
           닌 특성이 직관과 함축이라는 동양적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먹의 농담을 살린 화면과 여백을 적절하게 배
           치하여 강약과 혼탁을 조절하면 특유한 그림맛이 나름대로 우러난다. 그는 기법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던 중에 대학에서 ‘기법연
           구’ 강의를 맡게 된 계기로 학생들 나름대로 각자에 적합한 기법을 찾아 작업하는 과정을 가까이 관찰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작
           품을 보면서 다양한 기법에 대한 개별적인 방식을 인정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여러 기법을 실험
           하며 모색하는 가운데 학생들과의 교육현장을 체험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더불어 얻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무
           엇보다 작업에 있어 작가의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마음이 재료와 기법, 도구에 얽매이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은 대비를 이룬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가능한 한 인
           위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스러움 그 자체에 높은 가치를 둔다. 자연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을 함께 포용하며 전개되는 까닭이다.

           그는 먹의 농담을 이용하거나 먹물이 적절하게 번져 퍼지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더라도 이전과는 아주 다른 방식을 취한다. 또한,
           어느 정도 화면의 질감을 도드라지게 하여 입체감을 나타내는 경우에도 먹 자체에 의한, 이를테면 번지면서 흐릿하거나 깊이감
           이 살아나는 방법에 의존하지 않는다. 화면 위의 먹물이 지닌 특성인 번지게 하거나 퍼지게 하는 방법 외에도 마르는 정도에 따
           라 좀 더 짙게 덧칠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먹의 농담이 자연스럽게 나타나도록 유도한다. 그러는 중에 서서히 퍼지게 하거나 약간
           문질러 퍼지게 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그런 가운데 여러 준법이나 필법이 부분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붓 대신에 초기엔 나이프를
           사용하고 그 뒤에 주로 롤러를 사용하여 화면을 칠하는 작업을 해왔다. 작가에 따르면, 화면 위에 먹물이 흘러서 자연스레 마르
           는 과정까지, 대체로 열한 번 정도의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마무리에 이른다. 힘들고 고된 작업이라 여겨진다.


           자연스레 스며든 먹물 산(山)은 무의도의 의도라는 심정과 자세로 기다리는 중에 우연적 요소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입하여 형
           상을 빚어 놓은 결과물이다. 시간이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해 가는 끝없는 흐름으로서 운동과도 관련된다. 이 운동
           은 대체로 선형적으로 진행되나 때로는 역류와 맴돌이의 비선형적 순간도 겪는다. 그렇지만 운동은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
           의 생성과 성장, 소멸의 과정에 어김없이 등장하며 관계한다. 먹과 물, 그리고 시간이 기다림 속에 우연이 서로 어울려 나타난 형
           상인 것이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해 천천히 형성된 여러 형상들을 보며 ‘정적 속에 머물러 있다가 천천히 흐름에 이르는’
           즉, 고요함 가운데에서 움직임이 갖는 깊은 의미를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비유하건대, 마그마가 분출되어 위로부터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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