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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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高麗朝)에서 추(錘)의 외아들 위옹(渭翁)이 검교사농경(檢校司農卿) 겸 어사대부
(御史大夫), 은천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상주국(上柱國) 좌승상(左丞相)에 이르렀고 삼한
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에 책록(冊祿)되어 실직군(悉直君)에 봉(封)하여졌다가 고려왕실에
서 경순대왕(敬順大王)의 후손(後孫)으로는 유일하게 실직군왕(悉直郡王)으로 추존(追尊)
책봉(冊封)되었다. 그의 장남 김자영(金自英)은 배륭교위(陪隆校尉) 차남 자남(自男)은 삼
중대광 태사(三重大匡太師)였고 5세손 복영(僕永)은 관찰사(觀察使), 승련(承鍊)은 사공(司
空:정1품)을 지냈고 6세손 정위(正位)는 동래부사(東來府使), 7세손 자주(自柱)와 10세손
윤성(允成)은 대장군(大將軍), 정휘(正暉)는 도통사(都統使)대장군(大將軍), 산수(山壽)는
안동부사(安東府使), 11세손 득강(得江)은 간의대부(諫議大夫), 해(偕)는 호부상서(戶部尙
書), 응(膺)은 상장군(上將軍) 등을 역임(歷任)하였고 인궤(仁軌)는 충렬왕(忠烈王) 16년
(1290년)에 합단적(哈丹賊)의 침입 시 호군(護軍)으로서 왕(王)을 호위(護衛)하여 많은 공
(功)을 세워 가야향(加也鄕)을 춘양현(春陽縣)으로 승격(昇格)시켜 주었다.
조선조(朝鮮朝)에 와서도 11세손 천봉(天奉)은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 13세손 익
정(益精)은 이부상서(吏部尙書), 학(鶴)은 전의감(典醫監), 광연(光鍊)은 전리판서(典理判
書), 광유(光裕)는 중랑장(中郞將), 14세손 충민(忠敏)은 한성판윤(漢城判尹), 미(美)는 대
사간(大司諫), 15세손 성경(成慶)은 안동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 욱(郁)은 병조판서
(兵曹判書), 중순(仲淳)과 계순(系淳)은 상장군(上將軍), 말순(末淳)은 군자정감(軍資正監)
종순(終淳)은 적순부위(迪順副尉)등을 역임하였다.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중순(仲淳)은
「단종손위(端宗遜位)를 보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落鄕)하여 여장망혜(黎杖芒鞋)로 여생
(餘生)을 마쳤다」는 기록이 상장군(上將軍) 김공묘갈(金公墓碣)에 적혀있다.
삼척김씨(三陟金氏)의 역대 주요인물로서 김병충(金秉忠)을 빼놓을 수 없다. 중종반정
때 박원종(朴元宗), 성희안(成希顔) 등과 분의결책(奮義結策)하여 연산군(燕山君)의 혼정(昏
政)에 반기를 들어 중종반정을 성공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정국공신(靖國功臣) 107명
중의 한 분이다.
중종조에 동래부사(東來府使)를 지낸 김양필(金良弼)은 삼포왜란(三浦倭亂)때 큰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고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경상도절제사(慶尙道節
制使)겸 동래부사(東來府使)로 부임, 그 치적이 주민의 함송(咸頌)하는 바 있었다.
그의 동생인 김양보(金良輔)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분으로 임진왜란(壬辰倭亂) 중 어가(御駕)를 의주(義州)까지 호송(護送)하였다가 환어(還
御)도 함께 한 공(功)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되었고 척주군(陟州君)에 봉(封)해졌다.
조선조(朝鮮朝) 건국 초의 원종공신(原從功臣) 봉열대부(奉列大夫)였던 김성고(金成告),
목릉(穆陵)의 용사역(龍蛇役)에 공(功)을 세워 순충보조공신(純忠補祚功臣)으로 추증(追贈)
된 김논동(金論仝)과 임진왜란(壬辰倭亂) 중 왕자사부(王子師父)로서 왕(王)을 호송(護送)
한 공(功)으로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으로 책록(冊祿)되어 진성군(眞城君)으
로 봉(封)하여진 김기문(金起文) 등을 향사(享祀)하는 삼공신묘(三功臣廟)는 충의(忠義)가
가치기준이 되었던 그 시대의 상징적 존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7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