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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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부위삼척김공망제비명
고 수의부위 김공께서 돌아가신지 지금 사백여년이 되었는데 징험할 만한 문헌이 없
는 것이 통탄스러웠다. 하루는 그 후손 형두, 세열이 나의 집을 찾아와 절을 올리며 말
하기를 우리 십사대조 수의부위공의 배위와 생졸 묘소가 모두 보첩에 실리지 않았으니
그 묘소와 체백의 안부를 어디에서 징험 하겠는가? 오래 되면 오래 될수록 더 실전될까
두려워서 장차 북삼면 구미산에 비석을 세워 한 번 제사를 지내 추원감모 하는 정성을
이루려고 하니 비문을 지어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내가 비문을 지을 사람이 아니라고
사양하자 더욱 간절히 청하면서 오열하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니 참으로 지극한 성
효에서 우러나온 바가 아니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가 당대의 문장가를 찾아 부탁
하지 않고 나같이 시골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은 세교가 있기 때문이어서 나 역시 그 효
성에 감격해 삼가 그 행장을 참고해 다음과 같이 쓴다.
공의 휘는 인(仁)이요 성은 김이니 삼척 인이다. 신라 경순왕의 제8자 휘 추공을 시조
로 실직군왕 휘 위옹 삼한벽상공신을 휘 자영은 배륭교위요 휘 세는 선절교위요 휘 복
영은 감사요 휘 정위는 부사이니 바로 공의 오(五)대 이상이다. 고조의 휘는 자주이니
대사간이요 증조의 휘는 중윤이니 중랑장이요 할아버지의 휘는 지제이니 무공랑이요 아
버지의 휘는 정휘이니 도통사대장군이요 어머니는 정부인 회덕 송씨이다. 아들 넷을 낳
았는데 공은 그중 네 번째이다. 오(五)대를 내려와 중란은 증이조참판인데 아들 넷을 낳
으니 장자 언립은 통정대부 사복시정이요 다음은 인립 연립 현립이며 내외 자손이 모두
칠백삼십명이니 매우 번성하다고 하겠다. 나 병해는 공보다 사백 년 후에 출생하여 공의
청덕 의행의 한둘이라도 기술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겠는가? 다만 깊이 흠모
함만을 믿고 간절한 효성의 뜻에 부응해 행장에 의해 이상과 같이 서술하고 다음과 같
이 명(銘)을 짓는다. 공의 이름은 세상에 알려졌으나 공의 무덤은 전하지 않네. 한 조각
비석에다 어찌 다 기록하나 산이 평지가 되고 바다가 다 마르도록
그 덕은 사라지지 않으리 한 해 한 번 제사를 올리니
사모하는 마음 더욱 깊어지네.
숭정기원후 오(五)년 신유(1921)2월 일 문묘직원
명주 김병해 지음 진주 심지황 씀.
후손 영혁 지도 근수.
50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