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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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구호종중 파조 이하 4대 묘이장 및 사당 건립기

                               (龜湖宗中 派祖 以下 4代 墓移葬 및 祠堂 建立記)

                             삼척김씨  구호파(龜湖派)  파조는  적순부위(迪順副尉)로  휘는  종순(終淳)이

                            며  신라  제56대  경순대왕의  여덟째  아들이신  시조  삼척군(三陟君)  휘  추공
                            (錘公)의 맏아들 실직군왕(悉直郡王) 휘 위옹(渭翁)의 14세 손으로서 할아버
                            지는 창신교위비순위겸후령중랑장(彰信校尉備巡衛兼後領中郎將)이요 휘는 광
                            유(光裕)이며  아버지는  현신교위용양위부사직(顯信校尉龍驤衛副司直)이요  휘

                            는 승효(承孝)이다.

                             부사직공(副司直公)이  네  아들을  두었으니  맏아들은  휘  중순(諱  仲淳)이

                            요,  다음은  휘  계순(諱  季淳)  휘  말순(諱  末淳)  휘  종순(諱  終淳)으로  4형
                            제  중  넷째  아들이시며  공의  아들은  무공랑(務功郎)으로  휘  세현(諱  世賢)
                            이며 그 아들은 휘 근, 당, 영(諱 瑾, 璫, 王榮) 삼형제를 두었으며 근(瑾)
                            은 휘 주은,  상은, 하은(諱  周殷, 商殷,  夏殷)  삼형제를 두었고 하은(夏殷)

                            은 성탁, 성준(聲倬, 聲儁) 형제를 두었고 당(璫)은 아들 휘 윤웅, 윤영(諱
                            允雄,  允英)  형제를  두었으며  윤웅(允雄)은  휘  종계,  종수,  종의(諱  宗繼,
                            宗壽, 宗義) 삼형제를 두었다.


                             공을  위시한  아들  세현(世賢:務功郞),  손자  근(瑾:效力公),  당(璫:修義
                            公),  증손  하은(夏殷:嘉善公),  윤웅(允雄:湖隱處士公)  현손  성탁(聲倬:刑曹
                            佐郞公), 성준(聲儁:訓導公)  등  8위는  근  500년간  시내  구호동  요과골(龜

                            湖洞  料科谷)에  안장(安葬)되어  있었고  증손(曾係)  상은(商殷:漢城判尹公)
                            은  요과골  석교산(料料谷  石橋山)에  유장(幽藏)되어  있었으나  영역(塋域)
                            이 국가정책으로 인한 산업단지개발사업구역편입으로 인하여  만부득기  면
                            봉(緬奉)케 되어 이에 여러 자손의 결의로 1991년 5월 10일 시내 분토동

                            (지흥동  산50번지)  공의  현손(玄孫)  종계(宗繼:處士公)  유택(幽宅)  후면
                            상단에  전위(全位)  간좌지원(艮坐之原)에  그  후손의  이해와  협조로  각위
                            합폄(各位  合窆)으로  천묘(遷墓)하였다.  이장  과정에서  묘지석(墓誌石)  및
                            백자병(白磁甁), 대접, 접시, 청동기(靑銅器) 등 53점 유물이 출토되어 동

                            해시에  수탁보관(受託保管)되고  있으며  앞으로  지역  역사를  재조명하는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다.  당시  석의(石儀)가  수십리허(數十里許)를
                            운반도중  다소의  훼손(毁損)도  있었고  협소한  점도  없지않아  자손된  마음
                            에 송구함을 금할  수  없던  중  제손(諸孫)이 합력하여 둘레석  및  비석,  상

                            석 일부를 갱신(更新)하였다.

                             이어  묘지(墓地)  하단부(지흥동  250번지)에  바닥면적  90㎡의  슬라브  단

                            층의  사당(祠堂)을  신축하여“영모사(永慕祠)”라  편액(扁額)하고  공(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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