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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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설렘의 길이었다. 멋있고, 이 만추의 여정에 동참하는 모든
그것도 가족■형제등과 함께 한 여정이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었기 때문이며, 또한 여러 많은 형제분들도 쾌청하고 드높게 맑은 하늘은 이에 한
만나보게된다는 기쁨이요, 즐거움 때문이기 몫을 더해 주는 듯, 깊어가는 가을, 88고
도 했다. 속도로는 온 산야가 단청을 하고 아직은
같은 증조부님 밑에 이렇게 같은 동기간 노랗고, 황갈색과 붉게 물들은 단풍으로 마
들이 함께 하는 모임은 거의 매분기만에 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한차례 씩이지만, 사실 금번 모임은 지난 여기에 더 한가지, 가슴 떨리게 하는 것
여름의 폭염과 태풍 기타 여러 가지 여건 은 바로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이었다.
이 맞지 않아 거의 7〜8개월만에 만나게 자녀들이 거의 초등학교 5〜6학년이 되
되는 셈이었다. 면 학교에서 꼭 시조의 이름과 무슨파, 몇
광주를 주축으로 한 모임의 규모가 이제 대손이며 하는 것을 알아 오라는 것이었으
는 거의 전국에 걸치게 되었으니 그만큼 며,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이
우리 형제 • 자매들이 경향 각지에서 모두 면 의례껏 어디 김씨이냐고 묻곤 한다. 그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 때마다 “삼척 김씨”다 라고 하면 “그런 김
울을 위시하여 광주, 전주, 목포, 울산 등 씨도 다 있느냐?”고 의아해 하는 경우를
지에 흩어져 있던 동기간들이 모두 한자리 한두번 겪는 일이 아니었다.
에 모이는 자리이고 보니, 이 아니 즐거울 그때마다 열변을 토하듯 우리는 신라 마
손가! 지막 “경순왕의 자손”으로 바로 왕손의 후
철은 바야흐로 만추의 계절이라! 예라고 하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 해 주곤
그 누렇던 황금빛 물결도 어느덧 순간에 하였다.
다 없어지고 텅빈 들판에 간간이 갈대꽃들 물론 자녀들에게도 우리의 조상에 대해
이 바람에 나부끼고 철 늦은 코스모스도 설명해 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씩 눈에 띈다. 하지만 산야는 너무도 그러나, 막상 “삼척 김씨”라고 하면서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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