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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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조상의 묘역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직                     기원해 본다.

            접 답사해 보았는 지, 스스루- 자문해 볼땐                   이제 발걸음을 다시 우리 시조 왕능 묘역
            부끄럽기 그지 없다.                                으로 옮긴다.
            약15〜6년전 쯤 가친과 여러 어르신들과                     모두들 사뭇 경건한 마음으로 시조능을 뵙
            꼭 한번 와 보았을 뿐 이었으니 부끄러운                     고 참배를 올렸다.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이능은 신라 경순왕의 손자(경순왕의 8자

            그래서 금번 모임은 꼭 삼척, 바로 우리의                    추의 아들)인 “김위옹”의 능으로 “실직군
            시조의 묘역이 있는 곳에서 갖도록 하여                      왕”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인 왕건이 신라
            조상의 얼을 기리고 효를 만행의 근본으로                     경순왕의 복속을 받아 들이고 과거 이 지
            삼아 온 이치를 깨닫고 선인들의 발자취를                     역의 지명인 “실직군왕”으로 책봉하여 대우

            더듬어 보고자 함이었다.                              한 것이라 한다.
            옛 고사성어 중 논어의                   을 다시금       너무나 가슴 벅차고 뿌듯한 마음으로 릉
            떠 올려보는 계기도 될뿐더러, 물론 동기간                    주변을 돌아보고 석수들을 어루만져 보았
            중에도 와보지 못한 사람이 많음을 탓할수                     다. 이윽고 삼척시 사직동에 위치한 실직군
            만은 없는 노릇이기게 오늘의 이 모임은                      왕비능을 찾았다. 바로 큰 길가 옆이라(바
            우리들에게 더더욱 뜻있고 의미있는 행사                      로 곁에 천주교 성당이 있었음) 접근이 용

            이었다.                                       이했으며 공교롭게도 모친과 같은 밀양박
            삼척시 당저동 북쪽에는 고사리재, 서쪽은                     씨의 능으로 왕비능 다웁게 석의를 갖추고
            갈야산에, 동쪽은 북정산에 연결된 산줄기                     석수들이 도열해 있었다.
            에 우리 시조의 보본단이 있어, 매년 음력                    다만 아쉬운게 있다면 왜 함께 같은 곳에

            3월 15일에 대제를 올리고 있는 이곳에                     모셔져 있지 않고, 따로따로 떨어져 계셔야
            이제사 싸}와 본다.                                하는지 하는 의문과 여운이 남았다. 일말의
            사뭇 감회가 새롭다.                                여운도 있었지만,
            지금은 한창 보본단 중수 계획에 따라 왕                     여기에 금상첨화로 삼척에서 동해로 빠지
            묘, 제단, 위패와 주변환경 미화 조성 등                    는 바로 곁에 그 유명한 추암 촛대바위와

            대단위 공사를 추진하느라 대종회측에서                       추암해수욕장을 만나보게 되었으니 그 기
            온갖 열과 성을 다하고 계신듯하여 고마운                     쁨은 더할 나위 없었다.
            마음을 이 글을 통해서나마 표하는 한편,                     동해안의 삼 해금강으로 불리울만큼 자연
            종인들의 자발적인 헌금이 기탁되어져 본                      경관이 수려하고 빼어나니 그 옛날의 우암

            공사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되어지기를                      송시열이 아닐지라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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