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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020년 11월 18일 수요일                                                                           책과 이야기





                                                                                                                                                                                                                                                                                                                           제6장 불우에서 부른 노래
                                        -경남정신의 뿌리-



                         남명 선비문화를 찾아서



                                                                                                                                                                                          김종간  향토사학자

                                                                                                                   이어서>>>                                                                역시 작은 은혜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운치 있는 훌륭한 일을 모
                                                                                                                                                                                         두  꿈속에  떨어뜨릴  수  있어  오
                                                        김해남명정신문화연구원                                                함허정중수기(虛亭重修記) - 조 식曺植                               래 전하여 훗날 면목(面)을 마땅하게 하려면 그림을 그

                                                                                                                                                                       려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 폭의 흰 비단에 그 자취
                                                                                                                                                                       를 싣고 내게 부탁하여 그 일을 기(記)하도록 하니 감
                                                                                                                   가정(嘉靖,  명나라의  연호)  정미년(丁未年,  1547)봄에                히 글을 하지 못한다고 사양할 수 없어 이에 쓴다.”하
            이어서>>>                                            거두었다. 특히 우현(現) 방어전에서는 거창 지역                          영공(令公, 높은벼슬, 정3품) 김수문(金秀文)이 정자를                     였다.
                                                                                                                   새롭게 했다.
                                                              비변사가 말하기를 임진년에 거창의 산척 수백 명으
                                                                                                                                                                       작가 박홍미(美)는 선조 4년(1571)~인조 20년(1642)의
                                                              로 하여금 우현을 방어토록 했는데 많은 왜적이 여러                         황폐했을 때는 작아 보였는데 복구하고 보니 초나라처                        인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경주, 호는 관포
                                                                                                                   럼 크다.
            2) 정인홍                                            차례 진격했으나 이기지 못했습니다. 거창 이북의 산                         고요히 묵회(會, 조용히 깨달음)하니 운몽 8~9리가 온                     (灌圃).1603년 사마시와 160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
                                                              악 지형에 밝은 산척(尺)들을 규합하여 혁혁한 전과                         통 한 거울 속에 있음은 만물이 하늘보다 차이가 없으                       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615년 인목대비 유폐사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을 중심으로 의병을 일으켜                       를 거두었다.                                              나 허하니 포용하여 내방을 밝혀 바깥을 통제하여 보는                       건으로 사직하고 은거하다.
            활약했던  정인홍  역시  남명의  고제(高弟)였다.  그는                 구원하자는 계책이었다. 일종의 중상주의(重商主義)적                         것을 억제하였다.                                           인조반정 후 다시 벼슬길에 오르고 1624년 병으로 인하
            1592년 5월 10일 합천의 숭산동(洞)에서 곽준(鄭遂),                 인 대책이었던 셈이다.                                         일찍이 들으니 집을 보는 자는 그 귀퉁이를 보는데 건                       여 외직을 원해 창원부사로 나가 청렴과 덕정으로 여섯
            권양(權), 하혼(河運), 이대기(李大期) 등 문인과 동                   당시 선조와 대다수 조정 신료들이 명나라의 은 수탈                         곤이 6위와 더불어 8방에 아울러 벌려서 귀퉁이가 되                       번이나 포상이 내려졌다. 1635년 이조참판과 양양부사
            지들을 모아 창의했다. 남명의 고제이자 명망있는 학                      을 우려하여 은광 개발을 반대하고 있었던 현실을 고                         었으니 네모진 것이 귀퉁이로서 어찌 허한 속에서 나온                       를 지냈으며 장 유, 이 식,정홍명 등과 문명을 떨쳤다.
            자로서 이름을 날리던 정인홍의 휘하 에는 각지에서                       려하면 그의 이 계책은 실로 과감하고 현실적인 것이                         것이 아니겠는가. 동영(東盜:동헌의 둥근 기둥)을 버리                      함허정 시서는 1629년 음력 6월 보름날 함허정에서 쓴
            사졸(土卒)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그 수는 곧 수천을                     었다. 당시 조선에 주둔해 있던 명군 지휘관들 대부                         고 연자루를 사양함은 필시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서 정                       것으로,당시 김해부사  조 즙(趙蹟)의  초청으로 동래부
            헤아릴 정도로 불어났다.                                     분이 은광개발과 무역이야말로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                          신을 모으는 것이 거의 야(野)에 의논하던 뜻인가. 김                      사  류여각(柳格),  정창시(鄭昌詩),  전  경(全殿)  등과
            정인홍은 휘하의 병력을 사수(射手), 창병(兵), 기병                    선경제를 회복시키는 열쇠라고 강조했던 사실을 고려                          령공(金令公: 김해부사 김수문)이 활과 칼로 뽑혔는데                       청유하면서 지은 것이다.
            (騎兵) 등으로 나누어 조직적으로 편제하는 한편, 관                     하면  정인홍의  이  같은  계책은  탁월한  경세가(經世                    (무인 출신) 문장을 토론함이 선비와 같으니 이것은 생
            군 출신으로 지휘 경험이 많은 손인갑(孫仁甲)을 맞                      家)의 면모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각을 쪼개고 손가락으로 참고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함허정 시서(病虛亭 詩序) - 동래부사 류여각
            아다가 지휘를 맡겼다. 정인홍의 의병군은 이후 무계                                                                           정무(政務)는  여가라  그  사람의  대방(大方)을  보기에                  柳汝各
            (安溪),  안언역(安安驛)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3) 김면                                                는 족하지 못하다.
            일본군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특히 1592년 6월에 벌                                                                         애석하게도 그 사람이 떠나면 그 다스림도 또한 없어지                       6월 어느날 봉래(蓬萊, 지금의 부산시 동래) 동각에 있
            어진 고령의 무계 전투는 낙동강을 오르내리면서 준                       김면 역시 탁월한 역할을 했던 의병장이었다. 남명의                         겠지만 그의 마음 자취는 오히려 남아 있으리니, 후일  었는데  김해부사  조즙(進戰)이  글을  보내  “김해부의
            동하던 일본군의 수송 선단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                       문인이자 이황에게서배우기도 했던 그는 1592년 5월,                       이 집에 들어오는 자는 마땅히 집으로만 보지 말고 그  연지(蓮池)에  함허정이  있는데  탁영(金鼎係)  선생이
            다. 이어 정인홍의 의병군은 초게 전투, 안언역(安安                     정인홍과 더불어 창의를 모의한 뒤 자신의 근거지인                          사람으로 보는 것이 가하리라.                                    일찍이 기(記)한 바 있다. 바다 오른쪽에서는 이 정자
            驛) 전투 등을 치르면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1592년                   고령 양전동 (量田洞)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그                        조식(曺植, 1501~1572)은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                 가 가장 신기하고 아름다우며 연꽃이 많이 피어 창원부
            10월에 진주성을 방어하는 데도 참가하여 이른바 진                      는 주로 거창과 고령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이끌면서                          녕, 호는 남명(南冥), 과거에 응하지 않고 독학하였다.  사  박홍미(朴弘美),  자여(白如)  정명주(鄭鳴周),  낙강
            주대첩을 이뤄내는데 일조했다.                                  일본군의 진입을 막아냈다. 김면의 휘하 에는 고령과                         1531년  처가인  김해  탄동(炭洞:  대동면)으로  와서  산               (洛江) 이거원(李互源), 매계(梅溪) 전자윤(全子潤) 제
            자신의 전공을 조정에 보고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거창을 중심으로 양반과 농민, 노비 등 지역에서 사                         해정(山海亭)을  짓고  제자  교육에  힘썼다.  여러  벼슬                 현이모여 정자 위에서 잔을 들고자 한다. 원컨대 그대
            제대로 보고하지 않음으로써 공로는 비록 남보다 못                       회·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인물들이 대거                          로 부름을 받았지만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정진하                       와 더불어 10일을 마시고자 하니 그대가 번거롭지 않다
            했지만 사실 영남의 의병장 가운데 정인홍의 공로가                       가담하여 향토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며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의병활동에  면 잔치에 참석 바라네.”하기에 내 듣고 즐거이 소매
            제일이다.                                             김면의 의병군은 당시 금산과 개령 등지에서 준동하                          앞장서 국가 위기시 투철한 선비정신을 보이기도 했다.  를 걷어 올리고 갔다. 제공들이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
            조경남(趙慶男)이  《난중잡록(亂雜錄)》이란  책에서                     던 일본군을 맞아 유격전을 통해 혁혁한 전과를 거두                         선조때 대사간이 추증되고 광해군 7년(1615)에 영의정                     었는데 내가 제일 끝에 왔으므로 벌로 인사케 하여 기
            의병장 정인홍에게 내린 평가이다. 선조 역시 정인홍                      었다. 특히 우현(牛峴) 방어전에서는 거창 지역의 산                        이 더 해졌다.                                            쁘게 농담하며 가야금 타고 노래하며 밤낮 닷새를 마셨
            의 이같은 공로를 인정하여 상주목사, 진주목사 등의                      악 지형에 밝은 산척(山尺)들을 규합하여 혁혁한 전                         남명의 기문을 보면 김해부사 김수문(金秀文)의 부탁으                       다.  얼마  후  주인옹(조부사)이  잔을  들고  말하기를
            비중있는 관직을 잇따라 내렸다.                                 과를 거두었다.                                             로1547년 봄에 새롭게 한 함허정임을 알 수 있다. 습지,  “경승에서 항상 이렇게 많이 모일 수 없으니 이 어려
            정인홍이 처음 의병을 일으킬 때의 나이는 58세였다.                     비변사가 말하기를 임진년에 거창의 산척 수백 명으                          환적(宦蹟)조의  명종조(明宗朝)에  김수문의  이름이  있                   운 모임을 위해 서로 한 말씀 없을 수 없다”하여 이에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노인이었던  셈이다.  오랫동안                  로 하여금 우현을 방어토록 했는데 많은 왜적이 여러                         고 “목과정(木瓜亭)에 선정비가 있다.”고 적고 있다.                      제공들이 “그럽시다.”하였다 드디어 소첩(小站)에 제
            문치주의(文治主義) 분위기에 젖어 있던 조선 사회에                      차례 진격했으나 이기지 못했습니다. 거창 이북 지역                                                                             현의 성명을 쓰고 관은공(觀隱公, 박홍미)이 머리에 서
            서 선비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뭇 대신 칼을 들                      이 끝까지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                         함허정  시서(涵虛亭詩序)  -  창원대도호부사                          (序)하고 각각 사운시(四龍詩)를 지었는데 나 홀로 병
            고  전쟁터로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                습니다.                                                                                                     들어 하지 못했다. 3일이 지나고 회산(山, 창원부사 박
            다. 정인홍의 의병활동은 그 자신의 결단과 ‘실천하                      김면의  의병활동에  대한  선조실록의  평가이다.  이후                     박홍미朴弘美                                              홍미)은 치적이 최고라 하여 은대(銀臺, 승정원)에 들
            는 선비’로서의 책임을 강조한 남명 선생의 가르침                       그는 고령의 무게 등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도 승전                                                                              어가고  조옹(김해부사)은  만기가  되어  퇴임하고  명주
            을 그대로 실천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을 거두었고 1592년 10월의 진주성 방어전특에도 의                       숭정(崇禎, 명나라 연호) 2년(1629) 기사년에 함허정에                   (鳴周)는  추시(秋試)에  으뜸으로  합격하여  서울로  가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도  정인홍은  가만히                 병을 이끌고 참가했다. 조정은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서 잔치하고 소축(軸)에 서(序)하기를 “인생 백년 내                      고 나 혼자 남쪽에 머물렀다. 이해 10월 보름에 조옹은
            있지 않았다. 아니 그 자신보다 조정이 먼저 그에게                      1592년 6월엔 함천군수, 9월엔 첨지사(僉知事), 11월                    에 한바탕 입을 열고 웃는 것이 쉽게 얻을 수 없다. 하                     투서(投書)로 시작(時作, 함허정에 모여 술 마시고 시
            의병을  다시  일으키도록  종용했다.  경상우도에서  근                  에는  경상우병사,  이어  11593년  1월에는  의병도대장                  물며 김해는 예부터 남방에서 명승이라 혹 조정의 일을                       를 지은 일)에 흠포(次進, 관물을 사사로이 씀)했다.
            왕병을 불러 모으고, 대규모로 주둔해 있던 명군에게                      (義兵都大將)의  직책을  제수하기도  했다.  1593년  초                  받들거나 또는 여기에 우거하고 싶다. 읍의 성곽이 이                       하여 문책을 당하였는데 나는 그 서첩(書帖, 함허정에
            지급할 군량을 민간에서 거뒤들이려면 정인홍의 명망                       갑자기 병사함으로써 의병장으로서의 더 이상의 활약                          어지고 가까이로 한두 집, 멀리는 넓은 들판이다. 6월                      서 만든 시첩)을 열람하고 분개하며 탄식하였다. 아직
            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기꺼이 다시 일어나서 병                      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지만 당시 조정                         보름날 분성의 함허정에 모였는데 분성의 가장 중앙에                        수개월도 아닌데 그간 인사의 허영취산(虛認聚散)에 기
            력을 불러 모으고, 군량을 수집하는 데 힘을 나 바쳤                     에서 그 휘하의 병력이 경상우도에서 가장 대규모였                          자리했고 연못의 모양이 뛰어나 남방에서는 으뜸이다.                        약이 없음이 이와 같으니 세상을 돌아보며 탄식한다.
            다. 정인홍의 나이 63세 때였다. 노구를 이끌고 군량                    다고 파악했고 그에게 의병도대장이란 직책을 내렸을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머리카락을 풀어놓고 넘쳐흐르는                        작가  류여각(柳汝格)은  동래부사로  재임  중  김해부사
            을 보아 주었던 정인홍의 열성에 감복했년 명군 총사                      만큼 그는 비중 있는 의병장이었다.                                  술잔을 끌어당겨 단숨에 들이키며 음악이 바뀌고 울리                        조 즙의 초청으로 함허정에서 놀면서 이 글을 짓고 시
            령관 양호(楊鎬)는 선조에게 정인홍을 시상하라고 종                                                                           는 사이로 웃고 농담하니 무릇 등왕각의 모임이나 죽림                       (詩)를  지었다.  김일손,  조  식,  박홍미,  류여각  등  네
            용하기도 했다.전란을 맞아 정인홍이 보여 주었던 활                                                                           칠현(竹林上賢)의 놀이가  이보다 더  나음이 없으리라,                     사람의 함허정 기문(文)에서도 탁영이나 남명과는 너무
            동은 단순히 의병장의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다음호계속>>>                          누가 감히 영해 천리 밖에 이런 기특한 만남이 있다 하                      도 비교되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함허정 시(詩)
            의병장으로 있으면서 조정에 올린 상소에서 전란 중                                                                            겠는가?                                                에 탁영의 시가 있음은 당시 쇠(衰)할대로 쇠한 육신
            의 민생과 재정문제를 해결할 방책을 제시하기도 했                                                                            분백대록(白大,  분바르고  눈썹  그리고,  즉  미녀)의  기                때문일 것이다
            다. 즉 시장을 열어 물자를 유통시키고, 은광을 개발                                                                          녀가 좌우에서 일을 거들고 술과 음식 하는 선비가 이
            하여 그를 밑천으로 군수품을 마련하고 굶주린 사람                                                         김해일보               어지는데 한번 놀고 즐김이 어찌 임금의 은혜가 미치지                                   다음호계속>>>
            들을 김면의 의병군은 당시 금산과 개령 등지에서 준                                                                           않았겠는가. 이때 연꽃 향기가 땅에 가득하고 가랑비는                                                           김해일보
            동하던 일본군을 맞아 유격전을 통해 혁혁한 전과를                                                                            사람을 머물게 하니 조물주가 우리들을 배부르게 함도

                                                                                                                   김해다어울림생활문화센터, 기획전시 <우리 마을 박물관>展 개최
                       제13회 김해전국미술대전 28일까지 전시…

                              대상, 문미정 작가 ‘해학반도도’                                                                                                                                        회공헌사업으로  파견된  2명의  예술
                                                                                                                                                                                        인들이 작업한 작품이 걸린다. 강복
                                                                                                                                                                                        근  작가의  <김해  풍경  속  역사>는
                                                                                                                                                                                        금관가야의 도읍지였던 김해 원도심
                                                                                                                                                                                        이  변모해가는  풍경을  유화  작업을
                                                                                                                                                                                        통해  담아냈으며,  장선자  작가의  <
                                                                                                                                                                                        동상동  Hero>에는  작가가  디지털
                                                                                                                                                                                        작업을 통해 그린 원도심 인물 45명
                                                                                                                                                                                        의 초상화가 걸린다.
                                                                                                                                                                                        이영준  센터장은  “전시를  통해  김
                                                                                                                                                                                        해 원도심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 생
                                                                                                                                                                                        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
                                                                                                                                                                                        한다”고 밝혔다.
                                                                                                                                                                                        해당 전시는 2020년 10월 30일부터
                                                                                                                                                                                        오는  12월  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
                                                                                                                                                                                        며,  센터의  휴관일(월·화)을  제외
                                                                                                                                                                                        한 모든 날 운영시간 동안 무료 관
                                                                                                                                                                                        람이  가능하다.  전시  일정과  관련
                                                                                                                                                                                        한 자세한 내용은 김해다어울림생활
          제13회  김해전국미술대전  전시회가  은 작품들이 출품되고 있다.                                 1전시실에서  개최되며  대상  수상자             김해문화재단  김해다어울림생활문화                 는  김해  원도심의  선주민  노포  및  문화센터  블로그(blog.naver.com/
          17일부터  28일까지  김해문화의전당  올해는  915점이  접수됐으며  1차  사                       에게는 3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센터는  오는  12월  4일까지  센터의  이주민  점포를  인터뷰하여  지역의  da-eoullim)를  통해  확인할  수  있
          윤슬미술관 1·2전시실에서 열린다.                전심사를  통과한  525점을  대상으로                                               어울림갤러리에서  기획전시  <우리  문화적 특수성과 정체성 및 발전 방                              다.  한편  센터는  코로나19  예방을
          김해시에  기증한  김해전국미술대전  2차 심사를 거쳐 수상작을 선정했다.                             허성곤  김해시장은  “올해로  13회             마을 박물관>展을 개최한다.                    향을 밝히고자 하였다. 해당 주제에                위하여 센터 내에 발열 체크 및 안
          역대  대상  수상작품을  한자리에서  대상인  김해시장상은  평면분야(민                             째를  맞는  김해전국미술대전에  개              이번 전시는 (재)김해문화재단 문화                서는  총  8곳의  선·이주민  점포를  내 인력을 배치하고 매일 방역을 하
          볼 수 있는 기획행사도 마련된다.                 화부문)  문미영  작가의  ‘해학반도              성 있고 다양한 작품들이 많이 출품               도시센터와  김해다어울림생활문화센                 취재한 결과를 다루고 있으며, 원도                고 있다.
          김해시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미              도’가  수상했다.  십장생을  소재로  되었는데  작가님들의  관심과  열의에                         터가 주최하고 주관하며, 지역문화진                심의  변천사와  외국인의  증가에  따             센터주소) 김해시 가락로 94번길 7,
          술협회 김해지부, 김해미술대전 운영                하는  해학반도도는  무병장수와  부귀              감사드린다”며 “김해미술대전의 역                흥원의 후원을 받아 진행된다. 해당  른  생활환경의  변화,  김해  원도심
          위원회가 주관하는 김해전국미술대전                 영화를  기원하는  민화작품으로  다양              사가  더해져  시각예술의  현재와  전            전시는  김해  원도심의  문화적  가치             이  갖는  장점과  생활문화센터  활성             4층 김해다어울림생활문화센터
          은  문화예술의  도시  김해를  알리고  한 화면의 구성과 소재, 색감과 표현                          통,  가야왕도  문화의  맥을  이어가는           를  조사하고  재발견하기  위해  기획             화  방안  등의  의견을  담아냈다.  또           문의전화) 055-322-2021
          지역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전국공모              기법  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             가교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            됐으며,  전시는  총  3개의  소주제(<           한, 점포의 전경 및 오랜 시간 가게               블로그) blog.naver.com/da-
          로  열리는  미술대전으로  평면·입               다.                                 다.                                우리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김해  를 운영하며 사용해온 손때 묻은 물
          체·서화  3개  분야  10개  부문(서양           이를  비롯해  최우수상  2점,  우수상                                              풍경 속 역사>·<동상동 Hero>)로  건들의 사진도 볼 수 있다.                                eoullim                  김해일보
          화,  한국화,  수채화,  민화,  공예,  디        10점,  특별상  34점  등  총  525점의                                 김해일보     구성된다.                              또 다른 소주제인 <김해 풍경 속 역                  (http://www.gimhaeilbo.com)
          자인, 서각, 조소, 서예, 문인화)에서  입상작들이 전시된다. 시상식은 이달                              (http://www.gimhaeilbo.com)    그중 중심 주제인 <우리 마을 박물                사>와  <동상동  Hero>에서는  경남
          해마다 다양한 내용을 담은 수준 높                28일 김해문화의전당 윤슬미술관 제                                                  관  프로젝트>는  생활문화센터가  있              문화예술진흥원에서  신중년예술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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