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 - 메타코칭 공토 2024-03 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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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코칭 인지훈련                                                                     챌린지 2024-03



                                  - 바른 자세로 몰입하여 읽는다.
                 메타기억력            - 중심 단어 5개를 적고 내용을 줄거리로 만들어 본다.


                                                        장영실



                  조선시대의  뛰어난  발명가요,  과학자인  「장영실」은  우리민족의  창조성을  빛내준  인물로서  생활에

               필요한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세종대왕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장영실은  기생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현의  노비였던  천민출신이었다.  그러나  장영실은
               어려서부터  뛰어난  관찰력과  손재주를  발휘하였는데  처음에는  공조  참판  「이천」의  밑에서  활자를

               만드는  일을  도왔다.  그러다가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세종대왕이  농업국가인  우리  나라는

               천문관측과  기상관측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관측대를  건설하면서  장영실을  불러  그의  타고난
               과학적 재능을 펼치게 하였다.

                  그는  이천과  함께  오늘날의  지구본이라  할  수  있는  천문의,  혼천의를  만들었고,  금속  활자의

               제작을  지휘  감독하였으며  우리  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를  1434년에  만들어  보루각에  세웠다.
               또  천체를  관측할  수  있는  ‘간의’와  해시계인  ‘앙부일구’,  밤낮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계인

               ‘일성정서의’, 물시계 ‘옥루’를 만들었다.

                  장영실의  발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농사연구에  필요한  측우기  제작을  시작하여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는  원통형  그릇의  측우기를  만들었고  냇물의  높이로  비가  온  양을  재는

               방법도 생각하여 청계천과 한강가에 ‘수표’를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발명가  장영실의  생애는  불행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가  감독하여  만든
               세종대왕의  가마가  부서지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는  불경죄를  지은  것이  되었고,

               결국  의금부로  잡혀  들어가  백대의  곤장을  맞고는  관직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를  사랑하는

               세종대왕은 의금부에 부탁하여 매맞는 것을 줄이게 하였지만 끝내 관직에 다시 오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과학정신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빛내주었고 그의 소중한 문화 유산은 우리 민족의
               큰 자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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