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메타코칭 문해력독해력 어드밴스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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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리딩 문해력•독해력                                                                    어드밴스 21호




                                  -  바른 자세로 몰입하여 읽는다
                     속해           -중심 단어 5개로 문장을 만들어 연결하여 줄거리를 만든다.



                                                   서울의  궁궐





                  창경궁은  성종이  할머니들을  모시려고  지은  궁궐로,  효자로  유명한  정조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여  효와  인연이  깊다.  창경궁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  때  제  모습을
               찾았으나,  그  뒤로도  큰  화재를  겪는  수난을  당하였다.  문정전  앞뜰은  사도세자가  목숨을


               잃은  비극이  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왕비가  생활하던  통명전  서쪽에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뒤쪽에는  ‘열천’이라는  우물이  남아있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사람들이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면서  많은  건물을  헐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꾸었다.

               1983년에 동물원과 식물원 일부를 옮기고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이었으나,  영조  때  경희궁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인조

               이후  철종에  이르기까지  10대에  걸쳐  왕들이  머물렀다.  특히,  영조는  25년  동안이나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경희궁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로도  불렸다.  궁궐의  원래

               규모는  1500칸에  이르렀으나  일제  강점기에  강제로  헐려  터만  남아  있다.  최근에  옛

               모습을 일부 되찾았다.

                  지금은  덕수궁으로  불리는  경운궁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다.  선조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서울로  돌아오니  궁궐이  모두  불타  버려서  이곳을  넓혀  행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뒤에 이 행궁을 경운궁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조선  왕조  말기에  고종이  강한  나라들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거처를

               경운궁으로  옮긴  뒤,  비로소  궁궐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특히,  경운궁  안에는

               석조전과 정관헌과 같은 서양식 건물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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