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메타코칭 문해력독해력 어드밴스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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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리딩 문해력•독해력                                                                    어드밴스 21호



                     속해           - 바른 자세로 몰입하여 읽는다
                                  - 중심 단어 5개로 문장을 만들어 연결하여 줄거리를 만든다.




                                                   인조의  고민






                  인조  5년에  조선과  후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이것이  정묘호란이다.  인조가

               즉위하면서  명나라를  가까이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조선과  후금은  마찰을

               빚기  시작하였다.  결국,  후금은  명나라를  공격하는  데  방해가  되었던  조선을  침략하였고,

               정묘호란은  50일  동안  계속되다가  ‘정묘조약’을  맺음으로써  끝이  났다.  정묘조약에는

               ‘조약을  맺은  후  후금은  즉시  물러날  것,  물러난  후  다시는  압록강을  건너오지  말  것,

               양국은  형제의  관계를  맺되  명나라와의  관계는  계속  유지할  것,’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후금은  우두머리를  황제라  일컬으며  나라  이름도  ‘청’으로  바꾸었다.  그  후  청나라는

               조선에  많은  병사와  공물을  계속  요청하였고,  청나라와의  관계를  형제  관계에서  군신

               관계로  바꾸어  청나라를  섬길  것을  요구하였으며  국경을  침범하여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해

               가는 일로 청나라에 대한 조선의 감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신하들은 크게 두 편으로 나뉘었다. 즉, 청나라를 치고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척화론’과 주변 상황과 우리나라의 현실적 여건을 고려하여 청나라와의 화해를 깨뜨리면 안

               된다는 ‘주화론’이 팽팽히 맞섰다.

                  인조는  척화파와  주화파의  팽팽한  논쟁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결국  척화파의
               의견에  따라  청나라의  요구를  무시하고  친명정책을  유지하였다.  이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인조  14년  병자년에  청나라의  황제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왔으니,  이것이
               ‘병자호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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