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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코칭 인지훈련 챌린지 해설지
- 바른 자세로 몰입하여 읽는다.
메타집중력 - 중심 단어 5개를 적고 내용을 문장으로 만들어 본다.
석주명
석주명은 190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개성에 있는 송도 고등보통학교에 다니기 위해 고향을 떠
난 그는 공부보다는 음악에 더 관심이 많은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의 악기 연주 솜씨는 친구
들 사이에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첫 학기에 꼴찌를 한 그는 죄송하고 부끄러워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갈 수 없었다. 그 때부터 그는 책벌레가 되어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1929년, 21세에 유학 생활이 끝나고 함경 남도 함흥에 있는 영생 고등보통학교에 선생님으로 가
게 되어 나비 연구를 시작하였다. 2년 두에 모교인 송도 보통고등학교의 박물 교사로 옮겨 간 석주
명은 본격적으로 나비를 채집하여 박물관은 온통 나비 전시장이 되었다.
그러던 중 고비 사막을 탐사하고 우리 나라에 들른 미국의 지질학자 모리스 박사가 개성과 경성
의 영어 발음을 착각하고 개성역에서 내리게 되었다. 모리스 박사는 개성 시내를 구경하다 석주명이
있는 송도 보통고등학교 박물관 표본실을 보고 놀라서 미국의 곤충학계와 표본을 교환할 수 있도
록 주선해 줄 것을 약속하고 떠났다. 석주명의 외국어 실력은 조선에서 첫째로 손꼽힐 정도였으니
의사 소통에 불편함이 없었다. 이것을 계기로 미국의 여러 박물관으로부터 마음껏 나비 탐사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지원 받게 되었다.
석주명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나비를 채집하였다. 다른 분류학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
도로 많은 75만 마리의 나비를 조사하여 800여 개가 넘는 잘못된 학명을 정리했다. 또 250여 종이
나 되는 우리 나라 나비를 밝혀 내어 당시 학계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 받았다.
1938년, 영국 왕립 아시아학회에서는 석주명에게 ‘조선산 나비 총목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
다. 석주명은 학교를 그만두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300권의 책과 200여 편의 논문을 4개월만에 읽어
치운 뒤, 미심쩍은 부분은 학자들을 찾아가 토론을 벌이면서 8개월 만에 원고를 완성했다. 1940년에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영국 왕립 도서관에서 한국 사람이 지은 유일한 책이 되었다. 이
일로 시골 학교 교사였던 석주명은 세계에 30여 명밖에 안 되는 세계 나비학회의 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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