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박용인 작가 e-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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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떠한 사물이든 눈에 닿는 모든 것 또는 설사 망막으로 파악할 수 없는
                                              비가시적인 것일지라도 그림의 주제로 삼는다. 풍경으로 비롯되는 소재에서 때로는
                                              정물이나 인물에 초점을 모으기도 하는 구상적 형상에서 이미지를 풀어 놓고 있다.
                                              나의 그림의 형상들은 침전된 분위기 속에서 파악되어지거나 묘사적으로 접근된

                                              형상이 아닌 심의에 파악 되어진 형상을 자유로운 의상(意想)으로 전개 시켜 시적
                                              정감을 수반한 채 마음의 미세한 움직임에 의해 굴절되어 나타난 형상이다.
                                              회화에 있어 창작상 이란 조형적인 요소 (선, 면, 점, 색등)를 어떻게 배열, 조합하고
                                              독자적인 형상성을 어떻게 표출 시키느냐에 따라 창작의 참뜻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나는 다양한 소재 및 대상을 간결하고 함축적인 조형어법으로 재현함에 나이프로
                                              물감을 두텁게 발라 긁고 문질러 마티에르로 깊이와 무게를 더해주고 붓으로 부드럽게
                                              처리한다. 즉 나이프를 사용한 두터운 질감의 효과에 의해 다져지는 견고한 조형성
                                              위에 마치 안개가 스며들 듯 빈틈없이 채워지는 번짐 기법의 색채효과로 미묘하고

                                              부드러운 공간감을 조성시킨다.
                                              오랜 연륜의 두께와 퇴락한 표정을 지어내는 마티에르의 효과와 보호막처럼 도포되는
                                              붓에 의한 처리가 고태(古態)를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 이는 신라 시대의 토기나 녹슨
                                              금속 공예에서 볼 수 있는 마티에르와 수묵 담채화에서 화선지에 번져 들어가는 먹의

                                              농담에서 신비스러울 정도로 미묘한 아름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견고함과 부드러움을 조화롭게 접목시킴으로써 부조화와 조화라는 미묘한 형식적
                                              논리를 이끌어 내고자 함이다. 대립적인 이미지를 대비시키는 데서 비롯되는 시각적인
                                              긴장감을 통해 선명하고 명쾌한 조형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색채 또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사용하기를 주저하는 검정에 가까운 어두운 색을 기조 색으로 한다.
                                              거기에 원색적인 이미지의 황색, 청색 초록, 보라 등 밝은 색을 대담하게 대비시킨다.
                                              모든 색은 캔버스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팔레트 위에서 배합되어 만들어진
                                              완성된 색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김으로써 채도가 높아 보여 그림이 화려하게 느껴지고

                                              선명해 진다. 대상을 단순화하고 평면적인 채색기법을 이용함으로써 시각적으로
                                              명쾌해 진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상황 제시나 설명적인 묘사가 전혀 필요 없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성적인
                                              반응으로 서의 인상(印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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