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 - 화집_권한솔
P. 4
2022 한국미술진흥원 특별기획전
작 평론
품
맑은 영혼의 울림과 순수한 조형미
권한솔의 그림에서는 풍부한 감수성과 섬세함이 전해진다. 그의 작업은 캔버스에 매직펜을 사용하여 하나하나 점
을 찍거나 부드러운 선과 풍요로운 색감으로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작업이다. 화면에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작
가들은 대체로 유화나 먹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심적인 아픔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이런 부류
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권한솔의 작품은 이런 부류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작품은
우선 부드러운 선이나 색의 형태로 시작되는 그림이지만 명료하고 맑은 특징을 지닌다. 맑은 영혼의 울림이 느껴질
정도로 선명성이 부각되고 투명하다. 슬픔에 잠기거나 우울하여 어딘지 덜 떨어지듯이 그어대는 터치나 색의 모호
함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마음속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서 찍어대는 터치가 아닌, 작가 자신이 표현
하고자 하는 구성과 형상성이 또렷하게 설정된 후 표현력 있게 전개되는 아름다운 조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작가의 그림은 차분하며 맑고 밝아서 보는 사람들에게 그림에 대한 미적 호기심과 단순하면서
도 복합적인 색상과 형상들로 구성된 조형성에 대한 훌륭한 교감을 선물한다. 단순한 점묘이면서도 남다르게 깔끔
함을 보여주는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기다림>은 꽃과 풀의 향긋한 냄새가 솔솔 나와 봄바람을 타고 살포시
내려앉을 것만 같은 자연 속에 홀로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는 고양이 한 마리를 묘사하였다. 비록 형태는 고양이지
만 여성으로 은유된 듯한 몸맵시에서 작가의 훌륭한 표현력을 볼 수 있다. 마치 한 여성이 기품이 넘치는 남성을 기
다리는 듯한 모습의 여성스러운 고양이를 화면 안에 등장시켜 작품을 보는 사람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게 하
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 한 마리를 중심으로 둘러싼 여러 종류의 꽃들과 적절하게 이미지화 된 나뭇잎들로 구성된
한 폭의 그림은 마치 작가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연유로 볼 때 작가의 감성과 예술성은 남다르며 매우 밝고 풍부해 보인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섬세함이 내재
하여 있는 깜찍하고 순수한 그림일 뿐만 아니라 현대성을 갖추면서도 우리의 정서가 담긴 조형미로 시선을 멈추게
한다. 갈수록 세계화라는 추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열악한 한국미술의 현 상황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이
러한 작품들은 그나마 위안을 준다. 앞을 보는 고양이의 뒷모습은 단지 아무 생각이 없는 동물일 뿐인 고양이의 모
습이 아니며, 마치 고양이를 의인화한 것처럼 표현한 형태에서는 작가의 심도 있는 표현력이 엿보인다. 더 나아가
때로는 깊이감이 있고 풍요로운 색감과 때로는 정통 동양화에서 즐겨 사용하는 흑과 백으로 이루어지는 단조로운
색상이 이러한 조형미에 힘을 실어 더욱더 인간적이며 친근감을 더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한솔의 그림에는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밝음과 풍요가 하나의 하트처럼 조화를 이룬다. 무언가
허전함과 외로움이 겹친 인생에 힘을 실어주는 희망의 그림이자 풍요로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작품에
는 사랑이 담겨있는 듯하다. 이처럼 사랑의 아름다움으로 이루어진 은밀한 독백은 자기 과시나 주장과는 거리가 멀
다. 이 독백이 화면 안에서 풍요로운 조형,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형상으로 승화하였다.
그러기에 작가는 일련의 작업들을 ‘풍요와 사랑’이라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펼쳐낸다. 이미지를 순수한 색감이나 선
과 점으로 배열하고 ‘사랑이 되는 색과 점’의 일루전으로 표상시키는 과정은 작품의 이미지를 더욱 깊이 있게 창출
할 수 있는 훌륭한 모티브임이 분명하다. 그는 순수성을 토대로 공간성과 시간성을 중시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삶
의 ‘허구성’과 ‘소멸성’에 관심을 가져왔다고도 생각된다.
특히 한국인의 감성을 토대로 전개하는 순수성, 자연성과 교감을 이루는 듯하여 주목된다. 그동안 자신의 순수한
내면세계를 통해 우리의 전통성과 무의식적으로 교감하며, 하얀 백지 위에 자신의 내면세계를 은은하게 투영시켜
가며 묵묵히 작업해 온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권한솔의 작품에 내재한 삶에 대한 사랑의 흔적과 관련된 순수미적인 조형적 감각은 곧 무의식 세계
와의 교감이라 할만하다. 이 교감 속에서 그가 표현해내는 일루전적인 이미지들은 새로운 경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세계로의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끊임없이 아름다운 색을 펼쳐내며 그리고 또 그리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허구의 삶을 ‘맑음과 사랑으로
채우기’를 묵묵하게 구현해내고 있는 작가는 다양한 색감과 형상을 통해 감성적인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 것이 분명
하다. 특유의 뛰어난 화면 구성력과 장식적 감각을 지닌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통해 ‘사랑의 풍요’를 향
한 조형의 길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다.
장준석(미술평론가, 한국미술비평연구소장)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