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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들여보내고 옆 건물 카페 2층에 앉았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최근 2.5에서 2단계로 내려가 모처럼 노트북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전이라
            면 장시간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일이 예사였지만, 요즘은 통 그러지를 못하니 이 시간

            을 허투루 보낼 수만은 없다. 며칠 붙들고 있던 시나리오를 밀쳐내고 백색의 빈 문서를
            띄웠다. 최근 어쩌면 가장 애정을 쏟고 있는 일의 서문이 될 글을 작성해 보기로 한 것인
            데 아이 하원까지 50분 안에 이 글을 완료할 리는 만무하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었
            다. 사실 미룬다기보다는 결국 나의 변명에 가까운 고백들 이기에 얼굴이 화끈거려서일
            것이다.



            미리 밝혀두건대 이 책은 각본집이기는 하지만, 오래 전 신춘문예 공모에 두 번이나 냈
            다가 떨어진 단편소설 <69세>를 길어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인 69세의 효정을 이해하기 위해, 아니 그가 되어보고자 무
            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소설쓰기에 무모한 도전을 했던 나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
            만, 각본집에 싣게 된 점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뿐만이 아
            니다. 이 책에는 시나리오를 쓰던 과정에서 써 내려갔던 외로운 일기들과 촬영 전 연출
            의 고민이 그대로 담긴 스토리보드의 민낯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야말로 한 편의 영화

            를 만들기까지의 고군분투기라 할 수 있겠다. 어릴 때 엄마와 시장에 가면 엄마는 너무
            하다 싶을 만큼 물건의 가격을 깎았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언제나 무안함과 창피함을
            감당해야 했었다. 그런데 평소 엄마의 평판은 손이 크고, 인심이 후한 사람이었다. 그러

            니까 나는, 엄마의 후자 쪽 유전자를 닮아 무안함과 창피함 따위 아랑곳없이 이 각본집
            에 뭐든 꾹꾹 눌러 담고 싶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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