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5 - 2023서울고 35회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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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후4시쯤에 자동차로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기엔 너무 늦은 시
                   간이다. 게다가 자동차로 오르니 흙과 나무가 주는 즐거움은 누리지 못한다. 자
                   동차 길은 매우 험하다. 스릴 넘치는 소름 돋는 드라이브 코스다. 설악산 백담사

                   를 오를 때 느끼는 소름은 버스에 탄 20여 명과 나누어 분산되지만 우리는 기껏
                   해야 4명이 나누니 스릴이 공포로 변한다.


                     꼬불꼬불한 길과 경사도 위협적이지만 마주 오는 차가 있을 때는 더욱 난감하
                   다. 옆으로 살짝 비켜 멈췄다가 출발해야 하는데 이때 잘못하면 뽀얀 먼지만 뿜어

                   대고 헛바퀴만 돌릴 수 있다. 겁에 질리고 호흡이 빨라진다. 자율적인 선택에 의한
                   공포는 그동안 잊고 살았던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기도 한다. 가령, 이대로 죽으
                   면 내 몸은 누가 수습하지? 늙으신 어머니는 누가 살피지?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

                   나 수 있을까? 끔직한 생각을 하다가도 바로 스스로 위로하는 대답을 찾아간다.


                     짧은 시간동안 마주치는 생각들은 전부 입체적이다. 완벽하게 고요한 밤중에
                   덜렁 별 하나를 바라보고 길을 찾아가는 것 같다. 모험에 빠져들수록 안 들리던
                   내면의 외침도 들린다. 뚜렷이 들을 수 있는 청각이 키워진다. 마주 오는 자동차

                   를 아슬아슬하게 피해야 하는 이 좁고 험한 길을 그냥 놔두는 것은 깨우침의 배
                   려인가. 수종사는 아마도 세조의 귓가를 종소리로 때리듯 우리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가르침이 있나보다.



                     갑자기 나한상이 궁금해진다. 잠자는 세조를 불렀다는 나한을 직접 보고 싶
                   다. 나한은 수행자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자를 뜻한다고 한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서 석가에게서 불법을 지키고 대중을 구제하라는
                   임무를 받은 자를 말한다. 불가의 불제자 가운데 부처의 경지에 오른 16명의 뛰

                   어난 제자를 ‘16나한’이라고 하며, 이들은 무량의 공덕과 신통력을 지니고 있어
                   열반에 들지 않고, 세속에 거주하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존자(尊者)가 된다고 한
                   다. 나한은 세조를 왜 산 속 동굴까지 불러냈을까?



                     세조는 조카인 어린 단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왕권을 찬탈한 벌로 항상 등창
                   이라는 피부병에 시달렸다. 전국에 물 좋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치료하던 중 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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