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2023서울고 35회 기념문집fox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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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언덕으로 바뀌었으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구불구불한 옛길은 가로,
                   세로 일직선의 바둑판 길로 바뀌었고 산과 과수원, 논과 밭이 있던 자리는 온통
                   아파트와 빌라, 빌딩으로 바뀌었다.



                     분토골 옆 자두밭 과수원 자리에 서울교육대학이 들어섰으며, 우면산 아래 과
                   수원 터에는 예술의 전당이 들어섰고. 우리마을(서리풀) 뒷산에 있었던 맛있기
                   로 유명만 배나무 과수원은 삼성레포츠센터가 들어섰다. 반포대교와 남부순환
                   도로를 잇는 반포대로가 뚫리면서 반포와 경계를 이루던 산허리를 깎아 평생 그

                   근처에는 안가고 살았으면 하는 법원단지와 검찰청 건물들이 들어섰다.


                     물론 서울고가 상명마을(상명달리)에 자리를 잡은 것도 이 즈음이다.



                     이렇게 반듯하게 새 길들이 뚫리고,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는 동안 작게는
                   5~6호 에서 크게는 40여 호에 이르기까지 산과 산 사이, 들과 산 사이, 그리고 적
                   당한 골짜기에 자리 잡고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오던 옛
                   마을들은 그 한없이 정겨운 이름과 함께 사라졌다.



                     서초동(瑞草洞)은 ‘상서로운 풀’ 즉 서리풀이 무성하다 해서 서리풀, 또는 상
                   초리(霜草里)로 불리던 지명에서 비롯되었으며, ‘소가 누운 산’ 모양이라고 하는

                   우면산(牛眠山)과 어우러져 소가 먹을 풀이 무성한 땅, 즉 풍요로운 땅이었음을
                   지명에서 알 수 있다.


                     서초동은 지금의 강남대로를 경계로 서쪽(동쪽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자리 잡은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서초리(瑞草里)와 명달리(明達里)를 합쳐서

                   1963년 1월 1일부로 서울시 영등포구로 편입되었다그 후 서초동은 성동구, 관
                   악구, 강남구를 거쳐 지금의 서초구에 이르게 되었다.



                     서초동에는 대략 11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의 이름과 위치
                   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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