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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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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지배를 지배하는 필연찬가
김영재 (미술사상가,철학박사)
우연의 지배란 우리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우리의 일을 역사(役事)하는 어떤 힘이 우연처럼 작
용하여 우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제 : 고요함과 움직임
『우연의 지배』의 부제로 제시되는 『고요함과 움직임』은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고요함에 생명력을 일깨우는 작
은 움직임을 테마로 한다.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 소리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말이다. 조는 듯, 병든 듯 움
츠리고 앉은 소리개가 질풍노도와 같이 먹이를 덮치듯, 조용한 수면에 물고기의 싱싱한 도약이 물보라를 일으
키듯 신선한 변화, 놀랄만한 상황의 전개를 의미한다. 그림에서 조는 듯 병든 듯한 상황과 잔잔한 수면은 여백으
로, 소리개가 덮치고 물고기가 튀는 상황은 붓 터치로 상형된다.
강구원의 여백은 오랫동안 정성 들여 가다듬은 바탕화면으로 자리 잡는다. 그 바탕 위에 붓 터치라고 했지만 기
실 망가진 붓이나 물감을 묻힌 꼬챙이로 화면을 파고들어 만들어진 환칠같은 선과 색채가 면을 만들고 화면의
깊이와 중층구조(重層構造)를 형성한다. 때로 덜 마른 바탕에 돌발적으로, 혹은 발작적으로 파고드는 일획(一劃)
은 화면에 행위의 과정으로서의 궤적과 포말을, 결과적으로 전기충격파나 후폭풍처럼 심금을 파고드는 단속선
으로 마무리된다. 강구원의 평온한 바탕과 발작적인 일획의 대치 및 조화의 화면은 동양적인 사고로의 변환 혹은
회귀에 대한 자기각성에서 온다. 서구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서구미술에 이끌려 다니던 세월에 대한 반성이었다.
여백이 그러하고 묵선(墨線)을 연상케 하는 까만 필선(筆線)이 또한 그러하다.그 화면에는 타인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진면목(眞面目)으로 환원하려는 의지가 깃들이어 있다. 외면적으로 비치는 사람
좋고 배려 깊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불꽃같은 삶을 화면에 담고 싶다는 것이다. 차분하고 자상한 인상
의 외면과 불꽃같은 내면의 만남이 현재의 여백 위에 파고 들어가는 단속선으로 상형된다면, 거기에 또 하나 화
면의 주장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여백 만들기는 사실상 화면의 주
장력과 처절한 투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화면은 자신에게 부여된 여백을 지키려 한다. 나아가 적극적으로 여백을
무의 상태, 혹은 아무런 인위적인 시도가 닿지 않은 최초의 화면(tableau)으로 남고자 한다. 그러므로 화면 위에
스스로의 세계를 형성하고 전개하며, 나아가 이상적인 화면질서를 꾸미려는 창조적 의지와 충돌하기 마련이다.
그 상충구조를 조화하기 위해 강구원은 화면을 오랫동안 정성들여 가공하여 보는 사람이 여백으로 인식하도록
하며, 나아가 화면에게도 충분한 영역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때로는 바탕화면을 만드는 데 약간의
무늬나 터치가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여백을 여백으로 남겨야한다는 화면의 자기보존 관성과 작은 충돌
을 일으킨다. 아무런 터치나 시공한 흔적이 없으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는 여백의 화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은 때로 어떠한 표상적인 터치가 들어가느냐보다 심각한 고민이 될 수도 있다.
여백을 지키려는 화면의 아우성과 어느 정도 타협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여백을 침해하는 첫 자국을 남긴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잘 만들어진 깨끗한 화면에 자국을 남긴다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처럼 경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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