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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Hwasaan, Kang - Incidental Dominion i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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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일이며, 그만큼 부담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구원에게 이 첫 시도는 가장 긴장된 순간이다. 화면과 자
신이 정신적으로 가장 밀접할 때 만족할만한 시작이 만들어진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이 무난하고, 억지로 만들
려고 하면 손이 많이 간다. 없는 것이 좋은 것이되 적은 것은 그 다음 좋은 것이고 많은 것은 마음이 정화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강구원이 생각하는 첫 자국의 속성이다.
어느 지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생명의 잉태와 전개를 창출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언제, 어느 정도의 과정에서
손길과 붓질을 원하는 조형의지를 멈출 수 있을까라는 문제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림을 통해 스스로
를 정화하는, 이른바 카타르시스에 이르는 길을 찾는 순례자의 역정과 같다고 표현될 수도 있다. 화면에 보여지
는 것과 보는 사람과의 소통은 스스로의 정화를 거쳐 숙성된 화면에서 비롯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구원의 동양적인 회화에 대한 갈망이 화면의 여백으로 나타났다면, 오랜 각고의 세월동안 가다듬는 여백으
로서의 화면은 흉중구학(胸中邱壑)을 화면 위에 쏟아내는 동양화가의 기개를 닮았다. 흉중구학이란 언덕과 골
짜기 혹은 도랑으로 상형되는 산천 경개를 눈이 시리도록 보고 마음에 담아둔다는 뜻이다. 또한 천석고황(泉
石膏 ) 혹은 연하고질(煙霞痼疾)이라고도 했으니, 샘과 바위, 혹은 연기와 노을로 표상되는 산천 혹은 자연에
대한 집착이 고황, 즉 가슴 아랫부분과 명치 끝 사이에 끼어 들어 고칠 수 없는 병이 되었다는 이른바 자연찬
가요, 자연예찬이다.
옛 사람의 산천과 자연사랑은 강구원에게 산천이 아니라 나무의 잘려진 모습,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사각형, 원,
또는 점 등 단순화한, 또는 본질환원된 요소들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심상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형상과 색
채, 그리고 공간의 문제가 가장 통제되고 억제된 상태에서 표출되는 조형의지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자연 대
신 조형요소가 내면에서 숙성하여 어느 순간 화면으로 옮겨지는 것이 강구원의 흉중구학이라 할 수 있다는 것
이다. 아마도 그러하기에 ‘네 그림에는 분노와 사랑이 공존한다’라고 지적할 수 있었던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강구원의 여백과 화면의 질서, 그리고 조형의지는 심적, 내면적 심상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화면의 주장력과 타협한 결과 조형성과 창의성은 행복하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강구원은 수평선이 죽음, 수직선은 삶이라는 조형적 해석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면, 동양화적인 맛에
대한 조형의지의 요구를 화면에 거부감없이 수용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이 화면상의 대 타
협 위에 강구원 회화의 대전제인 『우연의 지배』가 설명될 수 있다.
주제 : 우연의 지배
동양화의 지취(志趣)를 도입하고자 하는 강구원의 의지는 화선지나 장지를 연상케 하는 밝은 화면과 그 위에
깔리는, 묵선을 연상케 하는 까만 선묘들로 나타난다. 그러나 동시에 화면에는 독필(禿筆) 즉 몽당붓으로 바닥
을 파고 들어가는 선과 행위의 과정이 돌발적인 터치와 붓자국이 남기는 속도감, 그리고 비산(飛散)하는 포말
로 자리잡는다. 고요함이라 할 수 있는 동양화적인 화면은 그러나 동양화에서의 일획(一劃)이나 일필휘지(一筆
揮之), 혹은 파묵(破墨), 갈필(渴筆)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타쉬즘(Tachisme)을 연상케하는 대담한 붓자국과
바닥을 파고 들어가는 전기적 충격파같은 움직임에 의해 역동적인 화면으로 거듭 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우연의 지배는 사실 제한적이다. 돌발적인 터치가 남기는 속도감, 날렵한 필선(筆線)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려나가고 튕겨 나가는 물감들의 궤적과 포말 등은 사실 예기치 않은, 상상할 수 없는 우연은 아니
다. 그렇게 우연이라는 개념을 예견될 수 있는 반응, 예측가능한 궤적으로 규정하는 데는 유래가 있다. 그리고
그 우연, 그리고 우연에 의해 지배되는 현상계, 우연을 지배하는 필연이라는 종교적 체험과 종교관은 경우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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