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칭의와 성화-김세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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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라고 고백합니다.
사실 1세기의 유대교 모습에 대해 바울보다 더 신빙성 있는 증거자가 없습니다. 랍비 문서
들은 다 후대 문서들입니다. 바울은 1세기 유대교에 대한 직접적인 목격자이자 증인입니
다. 이러한 사람이 당시 유대교에 대해 뭐라고 증언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바울은 유대주의자들과의 논쟁의 상황에서 유대교를 비하하니까, 그가 유대교에 대해서
하는 모든 말들을 다 문자 그대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학자들이 헤아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비평한다’라고 합니다. 역사 비평,
문서 비평을 하는 이유가 그런 것입니다. 바울의 유대교에 대한 언명들을 그런 비평의 과
정을 거쳐 음미하면, 그들로부터 당시의 유대교에 대한 상당히 신빙성 있는 그림을 얻어
낼 수 있다고 보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제 책에서 주장했습니다.
제 책보다 조금 후에 던(Dunn)의 제자인 개더콜(S. Gathercole)이 “Where is Boasting?”이
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거기서 그는 당시 유대 문서들의 일부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탕자
의 비유(눅 15:11~32), 일꾼들의 비유(마 20:1~16), 부자 관원의 이야기(막 10:17~22) 등
공관복음서들의 증언들과 마찬가지로, 바울도 로마서 2:1~3:7에서 유대인들이 단지 자신
들의 선택된 언약 백성으로서의 ‘민족적 의’만을 자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 개개인의 율
법에 대한 실제적 순종으로 얻는 개인적 의를 자랑했음을 보여 준다고 해석합니다.
우리는 레이제넨(Räisänen)이 그러듯이 샌더스(Sanders)가 규정한 1세기의 유대교의 성격
에 근거하여 바울의 유대교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유대교를 율법주의적 종교로 왜곡한 것
이라고 비판해야 합니까? 아니면, 바울을 당시 유대교에 대한 한 중요한 증인으로, 또는
20세기의 샌더스(Sanders)보다 훨씬 더 신뢰할 만한 유대교의 해석자로 인정하고, 그의 유
대교에 대한 이러한 묘사를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까? 후자가 더 옳은 것 아닙니
까? 그렇다면 1세기의 유대교에 율법을 철저히 지켜 ‘자기의 의’를 얻으려는 경향이 있었
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7) 새 관점에 대한 평가: 문제점들과 공헌
(1) 문제점들
앞서 살펴본 대로 바울의 유대교에 대한 비판을 설명하는 새 관점 학파의 네 방법들이 있
었습니다. 그중에 다른 것들은 거의 잊혔고 던(Dunn)과 라이트(Wright)의 방법만 영향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그 학파에 속한 이들이 가진 다섯 가지 공통점을 모두 수용하기가 어
렵습니다. 그러므로 그 학파의 기본 전제인 유대교에 대한 이해가 조정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바울의 칭의론의 축소주의입니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구원론적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선교적 또는 교회론적 개념으로만 인식하는 축소주의는 명백히 옳지 않습니
다.
(2) 공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관점이 공헌한 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신약 시대의 유대교에
대해 우리로 하여금 더 정확히 이해하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율법—공로 종교’였
던 것이 아니라, 언약적 은혜도 함께 강조했던 ‘언약적 율법주의’의 큰 틀을 가지고 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