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칭의와 성화-김세윤
P. 24
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시킨 사건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속죄 행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됨을 표현
하기 위해 여러 그림 언어들(imageries, metaphors)을 씁니다. 바로 칭의(의인, 즉 무죄 선
언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사람 되기), 화해(하나님과 화평하고 친밀한 관계
를 갖기), 입양(하나님의 자녀 되기) 등입니다.
‘성화’도 그것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보통 그것을 칭의 다음에 오는 구원의 한 단계로
알고 있는데,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지칭해서 쓰기도 하
지만, 더 자주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세례 때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
로 바쳐지는 것, 즉 ‘성도’(‘거룩한 이들’)가 되는 것을 지칭하여 씁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속죄 행위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된 자들은 더 이상 옛 아담적 인간이 아니
고, 완전히 새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새 창조’라는 용어도 씁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속죄 행위에 힘입어 얻게 된 구원을 바울은 이렇게 다양한 그림 언어들로
표현합니다. 그것들을 ‘그리스도의 구원을 해석하는 범주들(category)’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그림 언어들로 표현하고자 하는 구원의 궁극적인 뜻은 똑같습니다. 하나입
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무한, 충만에 참여하게 됨’
을 뜻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 참여하게 되어서, 그 무한한 신적 자원으로
이루어지는 삶을 얻게 되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신적 자원으로 이루어지는 삶
이 어떤 삶입니까? 신적 삶, 하나님적인 삶이지요. 그것을 성경 숙어로 말하면 ‘영생’이라
고 합니다.
영생이라는 말은 원래 ‘오는 세대의 삶’이라는 말인데, ‘오는 세대’는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의 세대를 마감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대이니, ‘오는 세대의 삶’은 곧 우리가 하나
님의 통치를 받음으로써(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서 있음으로써) 얻는 삶입니다. 그
러니까 ‘영생’은 형식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요, 내용적으로는 ‘신적 생명’(하나님
의 무한, 충만으로 이루어진 생명)입니다. 이런 생명을 얻는 것을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얻는다고도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이라고도 표현합니다.
하나님적(신적)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됨’을 의미하는데, 그것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얻음(‘영화’, glorification)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대 교회나 그 전통을 이어 받은 동방정교회는 ‘[아포]데오시스’([apo]theosis)라고
하는데, 이것이 구원입니다. 인간들이 피조물적 한계성, 거기서 기원해서 그들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결핍성을 극복하고 초월자 하나님의 무한, 곧 충만에 참여하게 됨, 그리하여
온전한 신적 생명을 얻게 됨, 그리하여 ‘하나님과 같이 됨’—이것이 구원의 궁극적 의미입
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담과 아담적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됨’을 자신의 자원(지혜와 능력)으로
얻으려 하여 역설적으로 사탄의 죄와 죽음의 통치 아래로 떨어졌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그
의 죽음과 부활로 그러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으니(즉, 속죄하였으니), 이제 그 은
혜를 믿음으로 덕 입으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로 회복되어(즉, 하나님의 나라에로 이전
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생명 (‘영생’, 신적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같이 됨’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영생’ 또는 ‘하나님같이 됨’을
얻는 길은 옛 아담과 같이 하나님에 대해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이것을 현대 철학
에서는 인본주의, ‘Humanism’이라 함), 그 반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가 그리스
도를 통해 이룬 속죄의 은혜를 믿음으로 덕 입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회복되는 것이
라고 가르치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회복됨을 칭의, 화해, 성화, 입양 등 다양한 그림
언어들로 풍부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