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8 - 칭의와 성화-김세윤
P. 88
(12:3~13:10; 비교 마 5:38~48), 앞의 명제를 조금 다른 언어로 되풀이함으로써 의인으로
서의 삶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을 일단 결론짓습니다(13:11~14; 12:1~2과 부분적으로 수
미상관).
그러고는 바울은 14:1~15:13에서는 그 일반적인 가르침을 교회 내의 ‘강한 자들’(이방 그
리스도인들)과 ‘약한 자들’(유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에 적용하여 권면합니다. 12:1~2에
제시된 의인의 삶에 대한 명제를 풀면 이렇습니다. “너희는 의인으로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된 자이니, 즉 하나님께 바쳐진 자이니(즉, 성화된 자이니), 이러한 구원을 가져
온 믿음을 활성화하여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한 제사로 바쳐라(여기 12:1에 칭의를
성화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유의). 즉, 사탄의 통치를 받는 이 세상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살지 말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새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한 뜻을 분변하며
실행하는 삶을 살라(여기 12:1~2에 제시된 명제가 하나님 사랑의 계명의 표현임을 유의).
2) 개별화된 임무 수행의 요구—바울의 소명 사상
육신의 사주를 따라 사탄의 통치에 순종하여 죄짓는 삶을 청산하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즉 그의 통치를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법을 지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의인의 삶을 살라는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
인에게 공히 주어지는 일반적 요구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
게, 이러한 일반적인 요구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개별적으로 수행해야 할 임무를
주신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바울의 소명 사상입니다.
(1) 은혜
바울은 ‘은혜’라는 말을 두 가지로 씁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 힘, 선물을 지칭
할 때,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말할 때 씁니다(예를 들어, 롬
3:24; 5:2, 15, 21; 6:2; 고후 8:9; 갈 1:6; 2:21; 엡 2:7~8). 또 하나는 자신의 사도직을 지칭할
때, 특히 ‘내게 주신 은혜’라는 말로 되풀이하여 씁니다(예를 들어, 롬 1:5; 12:3; 15:15; 고전
3:10; 15:10; 갈 2:9; 엡 3:2, 7~8; 빌 1:7). 갈라디아서 1:15~16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이 두 의미를 통합합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Gabe, 선물)가 자신에게 사도직에로의 소명의 은
혜(Aufgabe, 의무)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 사함
을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게 하는 칭의의 은혜는 바로 우리를 하나님과 올
바른 관계로 회복시키는, 즉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는 은혜이므로 그 속에 하나님의 통
치에 순종해야 할 의무를 담고 있는 것임을 우리는 위에서 여러 가지 표현 방식들로 되풀
이해 강조했습니다.
이것을 케제만(E. Käsemann)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선물)는 우리에게 그분의 주권의 주
장과 함께 온다”, “그 구원의 선물을 주시는 이는 무시하고 그 선물만 받을 수는 없는 것이
다”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전통적으로 개신교가 이 사실을 무시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싸
구려 은혜’로 전락시키고 의로운 삶이 없는 칭의론을 가르쳐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의 구원의 은혜(Gabe, 선물)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라는 일반적인 의무(Aufgabe)만을
담고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에게 특별한 양태의 순종을 요구하면서 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