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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그물 작가노트

존재의 그물

임은진

여기 한 존재의 기억과 의식이 저장된 α (알파)가 있다. 아니 존재가 의

식하지 못하는 의식 너머까지 깊이까지 박제된 기억. 투명한 α (알파)

다.

문득, 죽은 듯 고요히 잠들었던 투명한 α (알파)가 깨어나 스스로의 치

유방식을 찾아 나선다. 똑바로 보기 힘든 어제의 기억들, 그리고 오늘

의 관계들, 내일의 꿈들이 한 가닥 한 가닥 한가닥 머리카락처럼 자라
나 서로가 연결되고, 끝없이 번식하며, 마침내 존재의 그물을 만든다.

사람과 사물과 네트워크가 복잡하게 연결된 초연결 사회, 한 존재의

그물은 또 다른 존재의 그물을 만나고, 서로를 비추고, 서로 공유하며,

서로에게 끝없이 작용하면서 끝없이 펼쳐진 인다라망 세계 속에 함께

존재한다.

함께 어우러진 존재가 주는 익숙함은 때론 상처로, 슬픔으로, 무료함

으로 한 존재를 점점 소진 시키고 어쩌면 파괴의 힘으로 작용하여 실

존마저 위협할 것이다. 이를 극복하고 치유하고자, 매력적인 가상의

존재와 마주하기 위해 한 존재는 자신의 의지로 마침내 오래된 인드라

망을 탈주하고, 초월하며, 새로 된 가상의 세계로 순수한 어린이와 같

은 존재의 시원을 찾아서즐겁게 잠입한다.

L I M E U N J I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