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 - 하철경 작가 e-book 2022 05 27
P. 3
이런 그의 회화적 출발이 어디에 근거를 두 것인지를 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고 있었는가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고백을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 기와집이 여자의 임농의 근래 작품은 무리한 비교 같아 보이
버선처럼 완만한 선들이 정말 우아하고 품위 지만 소정과 청전을 아우르는 경계에 놓여 있
가 있죠. 어렸을때 기와집에서 자랐고, 그런 는 듯 보인다. 송광사나 대흥사의 풍경에서
어렸을 때의 정서가 사찰로 이어져 가지고…” 보여지는 그윽하고 소박하며 세심한 기와집
이러한 그의 미학적 시선이 바로 고유한 아름 풍경에서 그러한 흔적들이 청전의 화풍을 언
다운 선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뜻 연상시킨다.
것이 임농 작품세계의 진수임을 증명해 준다. 청전의 산수화는 흔히 시골 어디에서나 볼
임농의 수묵산수화는 본질적으로 남농의 흔 수 있는 평범한 야산풍경으로 고요하고 정적
적이 강렬하게 느껴지지만 중기 이후 그는 스 인 느낌의 산이라는 점에서 임농의 자연과
승의 화풍에서 머물려는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닮아 있다.
과거의 고루한 수묵작업에서 탈피하여, 회화
의 일품을 중시하는 품격과 격조를 동시에 한편 이것에 비해 소정의 산들은 금강산 등
추구해야 하는 그만의 독창적 세계관이 싹트 두세 겹으로 무리를 이뤄 치솟는 절벽에 산
기 시작했다. 봉우리의 소나무들은 소정 특유의 위엄과 남
성적인 기개를 느끼게 하는데, 임농의 근래
그런 점에서 그의 산수는 분명히 오랜 전통 소품 속에 그러한 격정적인 남성의 변모가 엿
인 실경산수화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예술정 보인다.
신은 사혁의 화론 육법에서 보여지는 원칙들
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또한 먹과 담채의 발 어쨌든 임농은 우리 화단에 보기 드문 입지
묵에만 머무르지 않는 조형의지로 수묵담채 전적인 인물이다. ‘남종화의 거목’인 남농 허
와 백묘법의 기법을 적절히 혼용하면서 새로 건 선생의 마지막 제자에서 시작하여 한국화
운 기운과 형식을 극복하고자 고민했다. 를 현대적 조형 화법으로 계승하려는 전사이
그리하여 임농의 산수화는 선배 화가들이 즐 면서, 전국 각지를 한국의 구석구석을 수묵
겨 그려왔던 실경 산수화의 흐름을 거쳐 작 담채로 품어내고 또 후학들을 위해 선행을
가의 조형의지가 돋보이는 예술성과 정신성, 베푸는 것으로 볼 때 분명 임농은 보통 사람
단순미를 부여하는 임농 수묵화의 지평을 펼 이 아닌 큰 인물이라는 것은 아주 분명해 보
쳐 보였다. 인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가 한국 수묵화의 장욱의
아마도 이번 전시는 그러한 임농 회화의 분 <광초> 같은 화법을 이룩한 큰 그릇의 예술
수령의 변화를 신작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산수화의 관념이 아니
라 자연의 조화와 균형, 압축과 생략의 아름
다운 수묵화의 본질을 그가 어떻게 풀어나갈 ─ 2016년 개인전 전시평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