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지유라 작가 e-book 2022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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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집을 가진 화가 지유라



                             그리움과 향수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집




                                                                                           미술평론가 김종근



            한국 현대미술사 중에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가진 작                      느낌에 감치는 글맛으로 덧입혀진 그녀의 집이 얼마나
            가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장욱진 화가를                     행복한 안식처 인가를 인상 깊고 예쁜지를 그려내었다.
            꼽는다.
                                                               그 집들의 풍경은 프랑스의 니스에서 포르투갈의 리스
            왜냐하면, 그의 작품에는 작은 집, 가족, 자연 그것이 모                   본, 포르투, 그리스의 산토리니까지 글로벌한 집 모양의
            티브 전부일 정도로 단순하게 그 절정의 미를 남김없이                      컬렉션만큼이나 다채롭고 아기자기하다.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화폭 속에 그려진 집은 대부
            분 사각이거나 삼각형의 장난감 같은 형태의 쓸쓸하고                       우리나라의 여수, 속초, 목포 보리 마당까지 답십리에서
            소박한 집이다. 모두가 한국전쟁 이후 그 격동의 시대와                     대구, 제주도까지 샅샅이 그려낸 집의 풍경은 7~80년대
            풍랑을 모두 겪은 작가의 삶이 그의 체구처럼 왜소하게                      당시 영화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녹여있는 풍경 그 자체로서의 집이었다. 그림 속에 집은
            비록 어쩌면 아주 작지만, 자신과 가족을 품을 수 있는                     무엇보다 지유라 집의 특징은 먼저 우리나라 전통적인
            유일한 안식처였으며, 동시에 작가의 예술적 영혼을 불                      집과 가게에서 느끼는 추억어린 정취를 무차별적으로 호
            태우는 화실로써 집이었다.                                     출한다는 점이다. 아스라한 추억을 나무조각 작은 화폭
                                                               으로 그려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집 속으로 빠져
            지유라의 집을 앞에다 두고 장욱진의 집, 아틀리에를 떠                     들게 한다. 그리고 그시절을 추억하게 된다. '집'을 보며
            올리는 것은 우연히도 똑같이 집이라는 모티브에 매달리                      코흘리개 풍경의 정서를 체험한다는 것이 지유라 그림의
            는 애착에서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매력이다.


            특히 지유라는 이미 추억이 깃든 세상의 집들을 10여 년                    그려내는 재료와 기법, 특별히 너무나 작은 크기는 매우
            이상 직접 나무에 그리면서 ‘집유라는 화가’로 널리 알려                    각별하고 앙증맞다.
            져 있다. 그녀가 얼마나 집을 그리워하고 따뜻한 가슴속
            의 고향이었는가는 [돌아갈 집이 있다]에 감동적인 그림                     일단 그는 집들을 한결같이 나무 위에 직접 아크릴로 아
            에세이에 짠하고 충분하게 기록해 두었다. (돌아갈 집이                     주 꼼꼼하게 그린다. 그것도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당시
            있다. 지유라 저, 메이트북스 2020)                             간판처럼 아주 촌스럽고 정감 있는 글씨체와 색감으로
                                                               눈에 아른거리는 집들을 만들어낸다. 그것도 한결같이
            이 모두가 그동안 국내외 여러 도시와 마을의 집 탐방을                     아주 작게 미니어처 같은 장난감 집처럼 말이다.
            하면서 국내외의 집들을 손수 걸어 다니며 골라 작업한
            것들이다.                                              그녀의 집을 가만히 살펴보면, 힘든 시절의 집보다는 작
                                                               가의 어린 시절을 강렬하게 떠올리는 소중한 자유로움과
            그림을 그리며 만났던 솔직하고 센티멘탈한 순간들. 그                      동화 속의 평화로운 집이 사진처럼 등장한다.














                                             J     I     Y     U     R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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