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유현병 작가 e-book 2022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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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유현병의 문인선화는 ‘시적인 발견미학’이다





                                                        김 윤 섭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 대표, 미술사 박사






            그림들이 맑고 청아한 느낌을 전한다. 그림의 소                         를 체득해서 그림의 훌륭한 소재로 승화시킨다.
            재도 특별히 국한되지 않았다. 개인적인 관심사에                         잡학이 철학이 되니, ‘사리(事理)에 밝다’는 게 맞
            서 동시대의 사회적 감성까지 폭넓게 그려냈다.                          을 것이다. 그래서 유현병 그림은 삶을 바라보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들의 고민이 고스란                         유연한 시선이며, 삶의 기록이다.
            히 투영되었다. 그렇다고 너무 침울하거나 부정적

            이지 않다. 오히려 의연함이 앞선다. 삶의 고뇌를                        유현병의 ‘문인선화(文人仙畵)’는 특허청에도 등
            감내하는 품격이랄까, 뭔가 모를 ‘삶의 격’이 묻어                       록된 이름이다. 문자 그대로 ‘문인화(文人畵)’와
            나는 시선이다. 유현병은 이를 ‘문인선화’라 정의                        ‘선화(仙畵)’의 합성어로 볼 만하다. 흔히 문인화

            한다.                                                는 ‘조선시대 사대부 층이 여기로 그린 그림’이고,
                                                               선화는 ‘참선의 그림’ 정도로 해석된다. 이 둘이
            “혹시 ‘LA갈비’를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아세요? 태                      만났으니, 문인선화는 ‘문인의 여유로움과 참선의
            양과 지구의 지름 차이, 야구공 실밥 개수, 골프                        깨달음을 동시에 지닌 절제미학의 그림’으로 보면
            홀(Hole) 구멍의 지름 등의 공통점은 뭘까요?”                       어떨까. 유현병의 문인선화는 일상의 모든 경험에

            작업실에서 마주한 유현병 작가는 딱히 질문이라                          서 새로운 교훈을 발견하고, 순간순간의 생활 속
            고 하기엔 다소 요상한 말들을 건넸다. “LA갈비                        깨달음을 온기 그대로 그림에 담았기 때문이다.
            는 미국 LA에서 먹어서가 아니라, ‘가로로 자른

            (Lateral 혹은 Longitudinal Axis) 갈비’라는 뜻             실제로 일상에서 무심히 걷다가도 번뜩이는 문구
            이거든요. 태양의 지름은 지구의 약 108배이고,                        가 떠오르면 곧바로 적어 놓는 습관을 지녔다. 그
            골프 홀 지름은 10.8cm이니, 우리가 아는 ‘108’                    순간부터는 새롭게 그림을 그릴 생각의 설렘으로
            이란 숫자는 참으로 주변의 많은 요소들과 연결되                         들뜨기 시작한다. 일상에서 교훈을 채집하듯, 매
            어 있어요.”                                            사가 흘려보냄 없는 ‘사행일치(思行一致)’의 자

                                                               세이다. 인문학자 스타일의 진지함이 있는가 하
            덕분에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보니, 태양 지름은                          면, 시인처럼 감성적인 면을 지녔고, 시사가나 만
            지구의 ‘109배’, 골프 홀 지름은 ‘10cm’라고 나                    평가처럼 예리함도 겸비했다. 문인(文人)의 여유

            왔다. 단순히 정밀하게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로움과 선인(仙人)의 통찰력을 동시에 지향하는
            않았다. 이토록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삶인 셈이다.
            궁금증에 대해서 고민에 그치지 않고, 쉼 없이 그
            갈증을 해소하려고 정진(精進)하는 자세가 너무                          유현병의 그림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21세기
            나 흥미로웠다. 얼핏 ‘잡학다식(雜學多識)’하다                         현대문인화’로서의 깊이를 가늠하게 된다. 조선시

            고만 오해할 만도 하다. 흥미로운 관심사나 정보                         대의 문인화는 현실을 벗어나 다소 먼 이상향을

                                     Y  O  U     H  Y  E  O   N     B  Y  E  O  N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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