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임진성 작가 e-book 2022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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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금가루를 아교에 개어 만든 안료로 그린 는 작업 그 자체에 더 비중이 주어지고 있다.
니금산수의 전통은 현대 한국에서는 이미 잊 작가는 새벽에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 검은 배
혀진 전통이다. 금이 귀했던 조선시대에 금안 경을 가르는 푸른 여백은 작가가 경험하는 새
료는 왕실에만 한정적으로 허용되었다. 때문 벽의 빛이자 경계의 시간을 의미한다. 즉 존재
에 왕실용 공예품이나 불화 등에 주로 금분이 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 긴 침묵의 시간 속
사용되었으며 니금산수도 왕실과 친인척관계 에서 한 선 한 선 작가는 선을 내리 긋는다. 쉽
를 가진 화가들에 의해 주로 그려졌다. 당시 게 채워지지 않는 선을 긋는 반복적 행위, 그
사람들은 니금산수를 사치한 장식으로가 아니 속에서 그는 현대인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
라 수묵산수에 비해 훼손되지 않는 이상향의 상경, 화려하지만 신기루 같은 유토피아를 본
산수로, 또는 변치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 다. 초기의 금강산이 정치적, 이념적 현실과
로 이해했다. 반면 <몽유금강>에서 금분은 치 이상 사이에 부유하는 분단 상황에 대한 작가
장된 금강산의 현실을 상징한다. 검은 먹으로 의 발언이라면 현재의 작업에서 금강산은 다
짙게 칠해진 배경 위에 수직으로 길게 내려 그 시 산수의 전통으로 돌아가 오늘날의 시점에
어진 수많은 금빛의 산봉우리들은 육중한 바 서 산수의 의미를 되묻기 위한 장소가 된다.
위산의 중량감을 잃은 채 공중에 부유하고 있 수없이 변해가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자연
다. 그것은 훼손되지 않은 이상경이기보다는 과 인간이 합일된 이상경이 과연 금빛처럼 영
이념 대립 속에 박제된 이상경 즉 관광지화된 원하게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금가루처럼
금강산이라는 현실을 가르킨다. 가볍게 떠다니는 신기루인 것인지.. 이런 의미
에서 임진성의 <몽유금강>은 수묵으로 실경
2008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된 채 현재까지
을 그대로 재현하는 산수가 한국화의 전형으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초기의 <몽유
로 아카데미화 되어가는 현재의 상황을 벗어
금강>이 금강산의 재현에 보다 충실했다면 최
나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산수화의 가능성을 찾
근의 <몽유금강>은 재현성보다는 가는 붓으
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로 치밀하게 금분의 선을 수직으로 중첩시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