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교화연구 2021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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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소리가 끊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너무도 적막한 심인당! 도대체 어떻게 해
야 하나?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부처님,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
야 저 창밖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까?’ 이것밖에 없
었다. 그러던 중 2월 초 부처님의 답신이 왔다.
“야, 이 녀석아! 네가 이 낯선 곳에 왔으면 저 사람들을 끌어당길 생각을 하
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이 곳 사람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라고 생각을 해야지
이 동네 사람들에게 덕 볼 생각을 먼저 하느냐?” 라고 머리를 때리는 것이었
다.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새로운 힘이 솟아났다. 2월 봄방학 1주일 동안 ‘어린이 한문교실’을 운영하였
는데 어머니들과 함께 15명 정도로 공부를 마쳤다. 신고식은 일단 치른 셈이었
다. 여세를 몰아 다른 지역에서 하던 대로 ‘불교대학 금강경 대강좌’ 현수막 50
개와 전단지 10만장을 뿌렸다. 학생이 고작 3명밖에 오지 않았다. 도저히 개설
을 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뒤이어 ‘명심보감 대강좌’ 현
수막 50개와 전단지 10만장을 또 뿌렸다. 이번에는 15명의 학생이 모였다. 주
2회 7월말까지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이 학생들을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9월부터 새로운 학생을 모
집하여 도전한 것이 ‘논어 대특강’이었다. 20명 정도의 반이 편성되었다. 물론
그 전에 논어를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 여름방학 때 날치기로 한번 보고, 일주
일 내내 공부하여 수업에 임했다. 믿는 것은 오직 부처님, 나에게는 든든한 부
처님의 백이 있으니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라는 말이 딱
맞았다. 생각보다 내용이 너무 쉬었다. 논어의 내용은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이
었다. 말씀 하나 하나에 너무나 생동감이 있었다. 9월에서 12월 말까지 주 2회
의 수업을 진행하는데 힘은 많이 들었다. 학생들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내가 논어의 전문가인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시작한 것이 이듬해 맹자, 그다음 대학, 중용, 또 주역, 작년에 노
자와 장자, 올해 고문진보를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처음부터 의도
된 것이 아니다. 그냥 이렇게 흘러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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