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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면의 양안상의 전·답주(중초책 양안), 혹은 시주(時主)(지계양안)는 모두 721명인데 그 가운데
                  공씨는 [표 2]에서 보듯이 모두 34명이다. 2호주 18명에 시주 16명을 합친 것이다.

                    시주 34명의 경작형태를 구분해 보면, 지주(대지주〔천석군〕)는 80결 이상, 중지주는 50결 이상 80
                  결 미만, 소지주는 5결 이상 50결 미만)는 없고, 자소작농은 3명(8.8%), 자작농은 24명(70.6%), 순소

                  작농을 포함한 소자작농은 7명(20.6%)이다.
                    다시 시주 34명의 계층을 구분해 보면, 부농(1결 이상, 순수익 600두 이상)은 없고, 중농(50부~1

                  결, 300두 이상)은 4명(11.8%), 소농(25부~50부, 150두 이상 300두 미만)은 3명(8.8%), 그리고 빈농
                  (25부 미만, 150두 미만)은 27명(79.4%)이다. 그리고 이 빈농 가운데 빈농상층(100두 이상)은 5명, 극

                                           68)
                  빈농(100두 미만)은 22명이다.  또한 공씨 시주 34명을 포함한 초평면 시주 713명을 계층 구분해 보
                  면, 부농은 37명(5.2%), 중농은 65명(9.1%), 소농은 93명(13.0%), 그리고 빈농은 518명(72.7%)이다.

                    소결하면, 공씨 농민들의 80% 정도는 빈농이고, 이들을 포함한 초평면 농민들의 72.7%는 빈농으
                  로서 농업소득만으로는 자급자족할 수 없었고, 따라서 농업 외의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해 갔을 것으

                  로 추측된다.





                  2. 장시와 창의 운영


                    교통이 편리한 지역은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다양한 물자가 유통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곳에는 일정한 주기로 시장이 개설되었다. 5일장으로 대표되는 장시의 개설이 자리
                  잡게 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한양에서 삼남지방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한 수원부

                  는 서쪽으로는 어장이 풍부한 남양만, 동쪽으로는 안성 등의 곡창지대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일찍

                  부터 장시가 개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9)
                    영조 46년(1770) 편찬된 『동국문헌비고』, 「시적고」에 의하면 전국에는 1,062개의 향시(鄕市), 경기지
                                                70)
                  역에는 10개의 장시가 개설되었다.  조선후기 개설된 장시는 1·6일장-2·7일장-3·8일장-4·9
                  일장-5·10일장이 연계되어 일정한 범위내에서 상호 간 상품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원부의

                  장시는 개시일 별로 1·6일장이 19기, 2·7일장이 21기, 3·8일장이 19기, 4·9일장이 26기, 5·10
                  일장이 16기 확인된다. 장시일이 비교적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것은 각 지역의 장시가 유기적으로 연
                  계되어 장시일이 겹치지 않도록 조정되면서 상호 영향 아래 시장권이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수원부의 장시는 읍내장·안중장(安中場)·오타장(吾朶場)·석현장(石峴場)·오산장
      오산시사        (鰲山場)·신기장(新機場)·사슬곶장(沙瑟串場)·팔탄장(八呑場)이 개설되었다. 다음은 영조 46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와 『도로고』를 바탕으로 수원부의 장시현황을 정리한 것이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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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
                  68) 이세영, 위의 글, 304~310쪽. - 이러한 계층 구분은 위 글의 [보설]에 근거해서 구분되었다.
                  69) 강만길, 「조선후기 화성지방의 상업」, 『기전문화예술』, 제7호, 경기문화재단, 1999, 29쪽.
    168           70) 『동국문헌비고』 권72, 시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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