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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륭원 조성과 함께 대도시로 도약하기 시작한 수원부에는 정조대 상업진흥책에 힘입어 입색전·
                  어물전·포목전·미곡전 등의 시전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대부분 성내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수원부

                  기타 지역의 장시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확인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럼에도 오산장의 기록만을 살펴
                  보면 순조 30년(1830) 『임원십육지』, 순조 31년(1831) 『화성지』, 1851~1856년 사이에 편찬되었을 것으

                  로 추정되는 『여도비지』, 철종 14년(1863)경 편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동지지』, 고종 9년(1872)
                  《수원부지도》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71)

                    그런데 오산장의 경우 한자가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어 혼란스럽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명에서
                  ‘烏’, ‘鰲’, ‘五’, ‘吾’, ‘梧’자를 동의어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동국문헌비고』와 『도로고』의 ‘오산장(鰲山

                  場)’, 『임원십육지』와 『대동지지』의 ‘오산장(烏山場)’, 『화성지』와 『여도비지』의 ‘오매장(烏梅場)’은 모두
                  오산장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2)

                    순조 31년(1831) 간행된 『화성지』의 경우 장시가 기록된 권4가 소실되었지만, 권1의 재용조의 ‘각장
                  세전’을 통해 오산장이 확인된다. 당시 수원부의 각 시장에서는 장세(場稅)를 거두어 고마고에 납부

                  하고 있었다. 남문외장(南門外場) 309냥 6전, 세람장(細藍場) 33냥, 오매장(烏梅場) 309냥 6전, 팔탄
                  장(八灘場) 111냥 9전 6푼, 석현장(石峴場) 157냥 8전, 안중장(安仲塲) 53냥 4전, 사사곶장(沙士串場)

                                73)
                  55냥 8전이었다.  장세만으로 본다면 수원부 중심에 위치한 남문외장과 오산장이 동일하게 309냥 6
                  전으로 다른 장에 비해 월등히 많은 장세를 납부하고 있었다.

                    이는 오산장이 19세기 후반을 전후로 한 시기에 이르면 신읍의 중심지역인 성내·외의 장(場)에 버
                  금가는 규모로 형성되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오산이 한양에서 삼남으로 이어

                  지는 제5로에 위치하고 있던 것은 물론 청호역의 운영으로 큰 장이 개설될 수 있는 지리적 조건을 갖
                  추고 있던 것을 보여준다. 또한 오산장은 수원부의 남문외장과 전국 10대 장시 중 하나였던 안성장

                  을 연결해 주는 구실도 하고 있었다. 개시일을 보면 남문외장은 4·9일, 오산장은 3·8일, 안성장은
                  2·7일로 이어지고 있었다. 오산장은 한양의 물품이 수원·오산·안성을 거쳐 삼남지방으로 내려가

                  고, 삼남의 물품이 한양으로 공급된다는 점에서 징검다리 역할의 한 축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영조대에 개설되었던 8개의 수원부 장시는 19세기 말에 이르면 4개의 장으로 축소되어 운영되었

                  다. 절반의 장시가 사라지거나 합쳐져서 개설되었는데, 오산장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었다. 다음은 18
                  세기 이후에 운영되었던 오산장을 포함한 수원부 장시의 기록문헌을 정리한 것이다.






      오산시사





      제
      2
      권
                  71) 이정일, 「조선후기 수원지역의 장시연구-18세기 후반부터19세기 후반을 중심으로」, 『경기사학』 6, 경기사학회, 2002, 216쪽.
                  72) 이제제, 『수원의 옛 문화』, 효원문화인쇄, 1995, 37쪽.
    170           73) 『화성지』, 재용, 각장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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