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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정갈히 하였다. 그런데 당주의 역할을 잘못 수행하면 화를 입는다고 생각하여 당주로 선출되는 것
                  을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제수로는 소 한 마리, 시루떡, 밀주를 올렸고, 그 비용은 추렴을 통해서 마련을 했다고 한다. 당집
                  은 처음에는 초가지붕이었으나 무너져서 기와로 입혔다고 한다. 현재 당제사를 지내고 있지는 않지
                  만, 마을에서 신성시하는 곳이기에 이미 무너져 버린 상태이지만 현재까지도 신성시하고 있다.

                    또한 당말에서 당에 돌멩이를 모시게 된 유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조사되었다.
                    “당집에 신체로 돌멩이 두 개를 모시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장마철에 제보자의 큰할아버지가 30대

                  시절에 논에 물고를 보러 가는데 사람 살리라는 남·여의 목소리가 들려서 가보니 돌멩이 두 개가 물
                  살을 치올라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돌을 주워 놓았던 길옆에 현재의 당집을 지은 것이다.”라는 이야

                  기가 채록되었다. 그래서 각각의 돌멩이를 당할아버지, 당할머니로 좌정시키고 모시게 되었다는 것
                  이다. 신체는 창호지로 감싸서 모셨다고도 전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사람들이 말을 타고 현재의 당집 앞을 지나가는데 말에서 내려 절을
                  하지 않으면 말발굽에서 피가 나고 말이 움직이지 않았을 정도로 신성한 장소였다.”고 한다.
                                                                                    제보자 : 대원1통 통장(남, 63세)


                    한편 당말의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자료가 조사되었다.

                    당말에서는 마을제사를 당제사라고 했으며, 당집에는 돌멩이 두 개를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당제사 날을 가리게 되면 제사를 주관하는 당주를 선출하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는 표시로

                  일주일간 당주집 대문 앞에 황토를 한 무더기를 깔고 그 위에 물을 떠 놓는다고 한다.
                    당말에서는 당제사를 지내고 3일 후에는 ‘사례시루’라고 부르는 흰시루를 했다고 한다. 당주가 사

                  례시루를 해 가지고 당집에 가서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사례시루를 훔쳐 간 일이 발생
                  하였다. 그런데 사례시루를 훔쳐 먹은 이들에게 아무런 변고도 일어나지 않자 ‘절골의 당도 옛날 같

                  지 않다.’고 했다고 하는 일화도 전한다.
                    한편 당주가 되어서 당제사를 잘 치루지 못한 집에서는 식구들이 미치기도 하는 등의 우환이 생겨

                  마을사람들은 ‘당제사를 실패해서 저 집 식구가 다 미쳤다.’고 할 정도로 당제사를 엄중하고 신성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당제사에 올렸던 시루떡을 얻어먹으면 재수가 좋다고 하여 새벽같이 나와 서로 경쟁적으로
                  떡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의 신체인 돌멩이는 고깔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씌웠

                  다고 전하고 있다.
      오산시사                                                                         제보자 : 당말 마을회관 할머니들



                    (3) 절골의 당집
      제

      6             심학섭 어른은 절골에도 당집이 있었는데 역말의 당집에서 분가한 것이었다고 전한다. 이는 1960
      권
                  년대 중반까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세한 내막에 대하여는 기억이 없고 다만 당말의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를 모신 유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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