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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50원으로 한국남자 연급의 2배에 가까웠으며 일본여자는 1백 원으로 한국남자의 연급보다 1.2배
                  높았다. 농작부의 일급을 보면, 한국남자가 0.8원으로 일본여자 수준이었고 한국여자의 일급은 0.5

                  원에 불과했는데 일본남자의 일급은 1.5원으로 한국남자 일급의 2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한국남자
                  막일꾼의 월급이 40원인데 비하여 일본이 막일꾼의 월급은 1백50원으로 한국인의 4배에 가까운 금

                  액이었고 한국여자 막일꾼의 월급 30원은 일본여자 막일꾼의 월급 8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
                  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일제의 통제경제체제 속에서 한국인을 수탈하려는 차별노임

                  이 자행되고 있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1920년대에 들어서 수원과 더불어 오산은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를 보였다. 상업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바, 시장 수는 늘어났고 상업종사자 및 거래액도 증가했으며 보험회사와 일반 제조업체
                  가 들어서면서 오산의 경제사정은 이전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당시 상업의 종류를 살펴

                  보면, 물품판매업이 가장 성행하였고 그 밖에도 금전대출업, 물품대출업, 제조업, 운송업, 창고업, 청
                  부업, 요리점업 등이 주요 상업종류였다. 당연히 가장 성행한 물품판매업이 매출액이 가장 컸으며 다

                  음으로 제조업의 매출액이 컸다. 이러한 환경 속에 위치하고 있는 수원군의 외국과의 무역상황을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표 6. 수원의 수출 상황
                                                                                                  (단위 : t)

                              구  분                         1925                        1926
                             중국본토                    63t(과물 50t, 목탄 13t)              과물(28t)
                             만주안동                         우피(6t)                      우피(21t)
                               계                           69t                          49t

                                                                                              출처 : 오산시사


                    1926년에 조사된 수원지역의 행상인은 모두 1천6백98명이었는데, 그 중 31%인 5백30명이 수원 성

                  외시장에 몰렸고, 30%인 5백15명의 행상인들은 모두 수원 성내시장에 모였다. 그 다음은 오산·발
                  안·신기·반월시장 순으로 나타나 있다. 이들을 취급상품별로 나누어 보면 잡화를 취급하는 행상인

                  이 5백55명으로 전체의 33%를 차지하여 으뜸이고, 그 다음은 직물·사(糸)류 상인으로 2백38명, 곡
                  행상인은 2백37명, 해산물상인은 1백49명 등의 순으로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당시 수원지방의

                  경제사정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수원시장 다음으로 번성을 누렸던 지역이 바로 오산시장이었다. 오산지역의 행상인 3백28명 중 가

                  장 많은 물품을 취급한 것은 잡화이나 대개 단일 품종으로 보자면 곡물류가 가장 많은 물품이었고 다
      오산시사
                  음으로 직물·사류다. 수원시장에는 직물·사류가, 오산시장에는 곡물이 다른 지역보다 번성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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