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오산시 역사문화 이야기
P. 171
5. 신장동(新場洞)
오산의 다른 동과 마찬가지로 1989년 1월1일자로 당시의 궐리 일부, 수청리, 금암
리, 내삼미1·2리와 은계리를 통합하여 10통 70반으로 동이 되었다.
원래는 1789년(정조13년)에는 시봉면, 삼미면 지역이었으며, 1899년(光武3년)에는
문시면 지역과 초평면 지역으로 있다가 1914년에는 문시, 초평, 그리고 어탄면 지
역에도 일부 포함되었던 매우 복잡한 지역이었던 곳이다. 이것은 옛날 우리나라의
군·현을 비롯한 방리의 경계가 견아상제(犬牙相制)의 제도로 개의 위아래 이가 서로
어긋맞음과 같이 서로 어긋나고 뒤섞이어 일직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봉건제도하에서 지방의 모반을 방지하고 쉽게 진압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항은 신장동지역이 조선시대 때에 중규면, 구정촌이란 색다른 지명
의 등장이다.
중규면은 다른 문헌에서는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없다. 화성궐리사를 중심으로 오
랜 세월동안 마을 형성에 크게 이바지한 곳이며, 물향기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는
대표적인 전원도시이다. 신장동은 새장터의 이름을 따서 지은 동명이다.
★수청동(水凊洞)
수청말이라고도 하였으며, 옛날부터 맑은 물이 흐르고 늘 솟는 샘터가 있어 붙여
진 이름이다. 원래 수청동의 중심은 경부선 철길 동쪽(화성초등학교 부근) 이었으
나, 현재 수청동의 중심은 물향기수목원 부근이다.
독골(마을)
현재 대우아파트가 있는 일대의 마을로 독동이라고도 불렸으며, 윗독골과 아랫독
골이 있었다. 예전에 옹기를 굽던 곳이어서 붙여졌다는 설과 이(理)에 밝으며 의롭
고 인자하며 독실한 사람이 홀로 사는 마을이라 붙여진 설도 전한다. 그래서 현재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후자의 지명을 전설로 삼고 싶어한다. 그러나 문헌에서 살펴
보면 1889년에는 문시면에 옹동(瓮洞)이 있었고, 또한 어탄면에 독동(篤洞)이 나타
나 모두가 위치로 보아 현재의 수청동을 말함이라 본다.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