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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교는 오산장 인근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숙을 설립하여 국한문, 산술 등 근대적 학문을 가르쳤                                         183
                  다. 학생수는 30명이 넘었고, 사숙에서 열심히 가르친 지 3년이 되었다. 정한교의 오산 ‘사숙’은 1905                                    역사

                  년에 설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유적



                         水原郡 淸湖面 오山은 俗習이 貿貿에 문化未開더니 鄭漢敎氏와 졍호氏가 明進學校을                                            · 유물
                        設立고 敎育數年에 靑年子弟가 日就月新고 庠舍不容이라 졍漢敎 졍호 兩氏가 出捐금

                        二百원야 營建校舍니 該校監之設校化俗은 人皆讚頌더라.                       17)



                    또 다른 1907년 신문기사는 수원군 청호면 오산에 설립한 학교 이름이 ‘명진학교(明進學校)’라는 것
                  과 더불어 정한교와 정재호가 설립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1905년 오산 ‘사숙’이 개설되고 몇 년

                  간에 걸쳐 발전하여 학생수가 늘면서 교실에 모두 수용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이에 정한교·정재
                  호 두 사람이 200원의 출연금으로 교사를 새로 지었다. 이로써 오산 사숙은 명진학교라는 이름과 제

                  대로 된 규모의 교사를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명진학교 교감 정한교에 대한 칭송이 끊이
                  지 않았는데, 이는 정한교가 1905년부터 오산장 인근에 사숙을 세워 학생들을 교육시켜 왔던 노력에

                  대한 칭송이었다. 이후 정한교, 정재호 등 정씨 일가의 노력에 더하여 오산장 시장 상인들이 대거 의
                  연금을 출연하여 학교 규모가 커지고 학교 운영도 튼실하게 되었다.



                         水原 淸湖面 오山里 私立明進學校 該地 市民諸氏가 協議出捐야 設立하얏더니 學徒도

                        日增야 可有將進望인 校況이 不瞻 故로 該地市民 朴成伯 諸人이 牛犢廛에 每頭二十錢
                        만 收合야 該校에 捐助妥定이 此係諸人之當然義務나 未知官庭處分이라 야 水原郡守의게

                        請願얏 該郡守 此意로 學部로 報告얏다더라.                   18)



                    사립 명진학교는 오산장 상인들의 모금과 적극적 참여로 정상적 학교 형태를 갖추어 갔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학교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위하여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였다. 이에 학생들이 증가와 학교

                  재정을 위하여 오산시장의 박성백(朴成伯) 등 여러 사람들이 오산 우시장에서 거래되는 소 한 마리당
                  20전씩을 걷어 명진학교 운영비로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수원군수에게 청원하였고, 수

                  원군수는 다시 학부에 보고하였던 것이다. 애초에 정한교의 사숙에서 시작하여 정씨 일가의 도움으
                  로 교실을 증설하고 더욱이 오산장을 중심으로 하는 상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출연금을 내면서 명진

                  학교는 지역의 대표적 사립학교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에 오산 명진학교 개설을 가까이서 목격한 석초생(石樵生) 정설교(鄭설敎)는 명진학교 설립을 축

                                                         19)
                  하하는 글을 『대한매일신보』에 기고하고 있다.  명진학교를 설립한 정한교와 가까운 친척으로 보이



                  17) ‘明校將就’, 『대한매일신보』 1907. 7. 10.
                  18) ‘슈원군슈의 보고’, 『대한매일신보』 1908. 1. 1 / ‘牛稅補校’, 『대한매일신보』 1908. 1. 14.
                  19) ‘賀水原明進학校’, 『대한매일신보』 1908.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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