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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석곽묘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존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서 과연 온전한 하나의 분묘로 간주하여도                                           77
                  좋을지가 의문이어서 더 이상의 추론은 삼가고자 한다.                                                                   역사

                    필봉의 북편에 위치한 외삼미동 한양문화재연구원 부지에서는 통일신라로 추정되는 수혈 주거지                                              /  유적
                                   12)
                  2동이 조사되었으나  출토 토기나 주거지의 구조를 볼 때 분명치 않고 오히려 백제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                                                                                             · 유물




















                                     발안리 28호                                  발안리 29호





















                                   석우리 먹실 6호                                 석우리 먹실 7호


                                              그림 3. 경기 남부 지역의 사주식 주거지





                                                                                                 13)
                    수청동의 남쪽에 2-3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가수동에서도 백제 취락이 발견되었다.  주거
                  지는 3동에 불과하며 잔존 상태는 불량하다. 대신에 한성기에 속하는 플라스크형 저장시설이 25기

                  정도 발견되었으며 그 중 일부에서는 대용량 토기가 발견되었다.
                    내삼미동과 외삼미동 유적은 크게 보면 하나의 대규모 유적군으로 묶을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원삼국기에 해당되는 유구와 유물이 극도로 적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신라 유적도 매우 적은데 외





                  12) 한양문화재연구원, 2018, 『오산 외삼미동 유적 -오산 외삼미동 도시관리계획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13) 기전문화재연구원, 2007, 『오산 가수동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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