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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禿山城, 사적 140호)을 통해 오산시의 취락의 발달과 위치적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독산성은 오산시 119
의 서북쪽(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위치한 고성(古城)으로 오산시의 서쪽을 보호하기 위한 수비 산 생활환경
성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군사상으로 중요한 요지였다.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 장군이 활약하기도 했으며, 임진왜란 후에는 조정에서는 독산성(禿山城)에 세마대(洗馬 / 지명유래
臺)를 세우고 병기창(兵器廠)을 두어 무예 연습을 하게 했으며 1602년(선조 35년)에는 석성(石城)으로
수축한 기록도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수원도호부 소속의 오산원(烏山院)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오산은 교
통의 요지였으며, 주변에 시장촌이 발달한 상업적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 11. 《1872 지방도》의 〈수원부>의 오산지역
위 지도는 19세기 초에 제작된 전국의 군현지도집 《광여도》와 19세기 말 1872년에 제작된 《1872년
지방지도 地方地圖》에 나타난 오산지역이다. 조선시기 오산은 수원부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하천이
이 지역을 에둘러 흐르고 있다. 대부분 촌락은 뒤쪽으로 낮은 구릉이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
방향이 트여있는 삼태기 모양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하천 주변은 장마철이나 집중호우시기에 하천
이 범람하기 때문에 계곡의 구릉지와 평지가 맞닿는 완경사면에 주로 촌락이 입지한다. 이렇게 형성
된 촌락은 추운 겨울철 북서풍을 피하기 좋고, 농경지를 확보하기 용이하다. 부산동, 원동의 당말과
역말, 세마동의 지곶동, 서랑동, 양산동, 초평동의 벌음동, 두곡동, 신장동의 궁터, 내삼미동, 수청동
박동, 남촌동의 가장동, 가수동 등은 모두 이와 같은 위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