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제1권
P. 130
시가 증가했다. 전라도는 대부분 평야지대로 다양한 농산물과 해산물이 생산되었기에 장시가 성립될
수 있는 여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장시가 시작된 초기에는 1달에 2회씩 열리는 15일장으로
운영되었다. 이처럼 초창기 장시는 1달에 2회, 많아야 3회 정도 열리는 정도였으나 17세기 들어서면
서 1달에 6번 열리는 5일장으로 발달하였다.
전라도에서 시작된 장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조정은 장시에 대한 유용론과 폐단론으로 나뉘어
서 의견이 분분하였다. 농민이 토지에서 이탈하여 논밭이 황폐해지고 도적이 증가한다는 폐단론에도
불구하고 장시가 백성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며 특히 흉년이 들 경우 진휼에 도움이 된다는 유용론
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중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중종 13년(1518년)에는 방방곡곡에 장이 서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할 정도였고, 중종 15년(1520년)에는 제도(諸道)에 장시가 열리고 있다고 한 것을 보아
각 군현에 장시 개설이 보편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또 다른 기록상으로도 『명종실록』 3권 명종 1년(1546년)에 삼공(三公)이 아뢰기를 “장시(場市)는 전
라·경상·충청도에서 시도된 내력이 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빈민 중에는 의복을 팔아서 연명하는
자가 자못 많습니다. 다만 장시는 날이 혹 다르기 때문에 서로서로 옮겨가며 팔게 되어, 이 때문에 도
적이 성행합니다. 만일 한 달에 두 번 내지 세 번씩 영구히 격식으로 삼고 일시에 장이 서게 한다면 거
의 그런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명종이 “장시는 장서는 날을 정해 놓고 각 고을에서 일시에 똑같
이 장서게 하도록 하유하라.”라 답하였다는 글을 통해 정기적으로 장시를 열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순조 8년(1808년)에 편찬된 『만기요람』에서는 전국 15대 장시가 등장하기도 했으며 8도에 걸쳐 모
두 1,061개의 장이 서고 있고 그중 일부는 상설화(常設化)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초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예규지(倪圭志)에 의하면 전체의 장시는 1,052개였다. 이중 전국적으로
도 5일장의 형태가 가장 많았고 경기도는 5일장이 유일한 형태였으며 총 93개가 열리고 있었다. 5일
장은(1·6)·(2·7)·(3·8)·(4·9)·(5·10)의 다섯 가지 형태로 열리는데 예를 들어 (1·6)장은 1
6)
일·6일·11일·16일·21일·26일 열리는 장을 말한다.
표 1, 1830년경의 지역별 정기시장
지역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계
개시횟수
3일장 - 3 1 - - - - - 4
5일장 93 146 159 243 51 79 92 42 905
10일장 - 6 28 25 - 24 42 - 125
오산시사 15일장 - 3 - - - 6 9 - 18
계 93 158 188 268 51 109 143 42 1,052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장(市場)’
제
1
권
5) 국사편찬위원회 편, 『장시에서 마트까지 근현대 시장 경제의 변천』, 2007.
128 6) 『시장(市場』,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