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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수원지역 지주와 소작농은 급증하였으며, 자작과 자소작농의 수는 날로 감소하였으나 읍
면별 편차가 심한 편으로 현재 수원시인 수원읍에 부재지주가 편중되어 있었다. 1923년 당시 오산지
역이었던 성호면의 농업구성을 살펴보면 총 1,056명 중에 부재지주는 없고 재지지주 30명 자작 8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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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작 405명 소작 535명으로 소작호비율은 50.66%였다.
이러한 편차에도 불구하고 오산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는데, 이는 당시 오산장에서의 거래액을
살펴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朝鮮の市場經濟』,(1929), 『朝鮮の市場』(1941), 『화성군지』(1990)
등의 통계자료를 종합해보면, 오산장에서의 1년간 거래액은 1913년 174,307円에서 1926년 238,564
円, 그리고 1938년에는 무려 913,400円으로 1913년과 비교하여 5배 이상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표 4. 1910년대~1930년대 오산장에서의 1년간 거래액
(단위 : 円)
1년간 거래액
1913년 1923년 1926년 1931년 1934년 1938년
오산장 (3·8일) 성호면 오산리
174,307 212,650 238,564 306,854 469,816 913,400
(단위 : 円)
913,400
1,000,000
900,000
800,000
700,000
600,000 469,816
500,000
400,000 306,854
238,564
300,000 211,650
174,307
200,000
100,000
0 1913년 1923년 1926년 1931년 1934년 1938년
그림 8. 오산장의 거래액
오산시사
오산장이 얼마나 번성하였는지는 비슷한 시기 수원지역의 시장규모 변화를 함께 살펴보면 더욱
확실하게 드러난다. 1913년 시장 거래액을 살펴보면 당시 수원지역에서 열렸던 장시 중에서 성내장
제 179,299円에 이어 오산장이 174,307円을 차지하였다. 상품의 수요 지역은 수원군의 초평, 청호,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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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 동북, 산성, 정촌, 이탄, 고두 등이었고 공급지역은 양지, 죽산, 이천, 수원, 안성군 보개면, 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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