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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동 연혁 51
생활환경
1. 중앙동(中央洞) / 지명유래
오산천의 동쪽에 있으며 오산시청이 위치한다. 부산동(釜山洞)과 오산동(烏山洞)의 일부를 포함하
는 이름이다.
1724년~1776년, 영조(英祖) 시대에 발간된 <팔도군현지도(八道郡縣地圖)> 수원부(水原部)에 따르
면 청호면(靑好面) 소속이었다.
1789년 정조(正祖) 13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水原部邑誌)』에 따르면 청호면 오매리와 부산리가
현재의 중앙동이었다.
1894년 고종(高宗) 31년에 발행된 기전(畿甸) 수원(水原) 영사례(營事例)에 청호면의 호구총수가 2
백19호였다.
1914년 4월 1일, 일제강점기에 청호면 오매리, 부산리 등은 성호면 1·2·3·4·5동으로 바뀌었
다. 일제가 면(面) 리(里)의 이름을 숫자로 바꾼 것은 제국주의를 위한 의식화였다.
1914년 9월 1일, 수원시 오산면이 되면서 오산리와 부산리가 중앙동에 속했다.
1960년 1월 1일, 오산읍으로 승격하면서 오산 1리·2리·3리·7리·8리·9리와 부산리가 중앙동
에 속했다.
1970년 6월 10일, 화성군 청사가 오산읍 오산 8리로 이전되면서 군청소재지와 읍소재지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1989년 1월 1일, 오산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옛 지명을 되찾았다. 오산1·2·3·7·8·9리와 부산
리를 합쳐 중앙동이 되었다. 동쪽으로 용인군, 서쪽으로 경부선 철길, 남쪽으로 군청사거리, 북쪽으
로 오산천을 경계하였다.
1) 부산동(釜山洞)
『삼국사기』는 백제 고이왕 5년(AD 238년)에 “왕이 부산(釜山)에서 사냥을 하고 50일 만에 도성으로
돌아왔다.”고 기록한다. 또 “신라의 진위현(振威縣)은 고구려의 부산현(釜山縣)이었다.”고 기록한다.
두 기록에 등장하는 부산과 부산현은 오산시 부산동을 가리킨다고 판단된다.
1995년 8월 13일, 대통령령 제14629호 시·군자치구역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의거 행정
구역이 조정되었다. 평택군 진위면 고현리(高峴里), 청호리(淸湖里), 갈곶리(葛串里)가 오산시 부산동
에 편입되었다. 삼국시대 이래 평택시 진위면의 생활권은 부산동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오산시 부산동의 역사는 1,700년 이상으로 볼 수 있다.
2) 오산동(烏山洞)
오산동은 중앙동, 대원동, 남촌동을 포함하는 이름이다. 오산시 행정의 중심지이며 오산시청, 오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