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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마동(洗馬洞) 57
생활환경
세마동은 서랑동(西廊洞), 세교동(細橋洞), 양산동(陽山洞), 외삼미동(外三美洞), 지곶동(紙串洞)을
포함하는 이름이다. 오산시의 북서쪽에 있으며 독성산(禿城山)과 황구지천(皇口之川)이 위치한다.
외삼미동에 위치한 고인돌 2기는 2006년 1월 23일 경기도 기념물 제211호로 지정되었다. 그중 북 / 지명유래
방식고인돌 1기에는 16개의 별자리 성혈(星穴)이 새겨져 있어 크게 주목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보유
하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의 전 단계의 별자리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조(正祖) 13년(1789년)에는 산성면(山城面), 삼미면(三美面), 시봉면(市峰面)이 소속하였다.
순조(純祖) 31년(1831년)에 발간된 『화성지(華城誌)』에는 문시면(文市面)과 산성면(山城面)이었다.
문시면에는 8동을 두었는데 명학동(鳴鶴洞)·죽담점(竹潭店)·묵암동(墨巖洞)·신촌(新村)·옹동
(瓮洞)·평촌(坪村)·세교(細橋洞)·관음동(觀音洞)이었다.
산성면에는 5동을 두었는데 서리(西里)·남리(南里)·지곶리(紙串里)·신촌리(新村里)·양산리(陽
山里)였다.
고종 31년(1894년)에 발간된 기전(畿甸) 수원(水原) 영사례(營事例)는 호구총수(戶口總數)를 5백57
호로 기록한다. 외삼미동, 묵암동, 죽미동, 독동, 수청리를 포함한 문시면에 3백12호, 서랑동, 남서
동, 지곶동, 세교동, 양산동을 포함한 산성면에 2백45호이다. 이 기록은 당시 청호면의 호구 2백19
호, 초평면의 호구 2백57호에 월등히 많은 수치이다. 독산성 주변의 세마동이 오산시의 중심이었다
는 사실이다.
1914년 4월 1일, 수원군 성호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41년 다시 오산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
다.
1960년 1월 1일, 화성군 오산읍으로 편성되었다.
1989년 1월 1일, 오산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옛 지명을 되찾았다. 세마동(洗馬洞)은 오산시에서 가
장 넓은 지역이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동이다.
1) 서랑동(西廊洞)
서랑동은 세마동에서는 가장 뒤늦게 생겨난 마을로 생각된다. 대한제국 광무(光武) 3년(1899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산성면 서리(西里)가 있는데 이것이 지금의 서랑리로 보인다.
1914년 4월 1일에 일제가 실시한 행정구역 개편 때에 처음으로 서랑리(西廊里)가 나온다. 이런 사
실로 보아 서랑동이 생겨난 것은 약 2백 년 전으로 보인다.
처음 마을이 생겼을 때는 사랑(沙浪)이, 사랭이, 사랑리로 불렸다. 그 후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 서
랑리(西廊里)로 불리다가 서랑동이 되었다.
서랑동은 오산시에서 최적의 전원 마을이다. 교통이 조금 불편하기는 하나 예전 그대로 모습으로
인심과 풍습이 남아 있어 고향 같은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