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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환경
제7장 초평동(楚坪洞) / 지명유래
초평동은 오산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개발이 비교적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초평동
은 초평면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초평면은 1789년과 1793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 초평면
(草坪面)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1831년에 발간된 『화성지』에는 초평(楚坪)으로 표기되어 있다. 『화
성지』 기록에 의하면, 초평면은 수원부의 남쪽 4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철리, 누읍리, 타종리, 마
유동, 신촌, 모전촌, 용란리, 서촌, 여대리, 내창동, 언은굴리, 대화촌, 궁기리, 어인포 등 14개 동으
로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1895년(고종 32) 발간된 『수원부읍지』에서도 초평은 ‘초평(楚坪)’으로
기록되었으며, 이후 4년 뒤인 1899년(광무 3) 5월에 수원부의 군수인 이범선이 쓴 『수원군읍지』에는
초평읍을 ‘초평(楚坪)’으로 기록하면서 수원부읍의 지도에는 ‘초평(草坪)’으로 표기하고 있어 당시에
도 ‘초(草)’와 ‘초(楚)’를 혼동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1831년에 발간된 『화
성지』에서 오산화성궐리사가 초평면에 속했으며 이런 사실은 1914년까지 계속되어 초평면의 지역이
오랫동안 현재의 신장동의 일부까지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개
편에 따라 청호면·초평면·산성면·문시면 등의 4개 면이 성호면으로 통합되어 오늘날의 오산시가
탄생한 것이다. 오산이 시로 승격되면서 옛 지명을 되찾아 초평동이라는 동 명이 된다.
제1절 가수동(佳水洞)
예전부터 물맛이 좋고 물이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냇물이 맑고 깨끗하지
는 않으나 예전에는 오산천의 물도 깨끗하고 아름다워 외지에서는 이곳을 물이 아름다운 마을 가수
동이라 했다고 전한다. 가수동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789년 초평면의 방리로 가사리(加士里)라는
지명이 나오고,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샘골을 통합하여 가수동(加水洞)이 되어 성호
면에 편입되면서부터이다. 가수동에서 대성을 이루고 있는 성씨는 청해 이씨와 동래 정씨이다. 그러
나 최근 택지개발로 인하여 집성촌의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자연마을을 찾아보기 힘들다.
■ 쇠죽골(마을)
부처내, 발안 등지에서 오산으로 장을 보러 오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쉬기도 하고 소달구지에 짐
을 싣고 장을 보러오다가 소의 여물(쇠죽)을 먹이기 위하여 쉬게 되므로 일대에 쇠죽을 끓이는 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