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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산(산)
지곶동에서 바라보이는 남쪽의 금암동 뒷산(여계산)으로 마을 앞에 있는 산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 장군바위(바위)
장수바위·장사바위·꼬꼬바위 등으로 불리는 바위로 지곶동 뒷산인 독산의 산성 남문 밑에 있는
바위로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무찌른 권율장군을 기리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지곶동
서남쪽에 있다는 독산려왕릉과 연관 지어 장군·장수·장사·꼬꼬바위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 애기장군바위(바위)
장군바위의 다른 이름으로 아기가 태어나 놀던 바위로 그 아기가 커서 장군이 되었다는 전설과 함
께 붙여진 이름이며, 그런 전설 때문에 마을 아낙네들이 잉태와 득남을 기원하던 바위라고도 한다.
■ 시내미다리(다리)
시내(川) 밑의 다리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며, 양산동의 예전 세람교(세남교)를 지곶동에서 부
르는 이름이다.
■ 선돌바위(바위)
쉰바위라고도 부르며 독산성 세마대의 남문 밑에 있는 바위로 생김새가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세
워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산을 오르다 너무 힘이 들어 쉬어가는 바위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
졌다는 설도 전해진다.
■ 몽릉(고총)
애기릉·여왕릉·독성려왕릉 등으로 불리는 고총(古塚)으로 독산성 남문 밑에 있다는 기록(『기전영
지』수원도호부 편)이 있으며, 조선 영조 임금의 아들 장헌세자(사도세자)가 온양에서 온천을 하고 환궁
길에 황구지천이 장마로 범람하자 독산성에서 하루 유숙한다.(경진년경숙) 세자는 독산성 남문 진남루
에 올라 내려다보니 남문 밑에 커다란 고총이 있어 옆에 있던 신하에게 물으니, 여왕릉이라고 대답했
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대화에서 오랜 시대의 왕릉이거나 그때의 고총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오산시사 기록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일인들이 이곳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도굴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문화재
적인 조사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곶동에서는 지금도 몽릉 또는 애기릉으로 불리고 있다. 지
역 어르신의 안내를 받아 답사한 분의 이야기로는 고총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도굴 흔적이 있고 묘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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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 상석을 비롯한 돌들이 흩어져 방치되어 있었으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인지 고총의 파손이 너무 심
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향토사학자 임종삼 씨가 비정한 독성려왕릉은 이곳이 아닌 성심학교 맞은 편
경사지 통봉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리고 독성려왕릉의 주인공을 백제의 진사왕으로 비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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