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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에 종이를 의미하는 ‘지(紙)’자를 사용하게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종이와는 무관하게 이 마 241
을에는 예로부터 감나무가 많았으며 가을이면 곶감을 꿰었음으로 지명에 ‘곶’을 사용한 것이라는 설 생활환경
도 있다. 하지만 이 마을이 ‘조이고지, 종이고지, 조꼬지’ 등으로 불렸던 사실로 미루어 지곶동은 종이
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지곶리는 종이를 뜨는 조지 / 지명유래
소(造紙所)가 이곳에 위치했다. 지곶동은 1789년(정조 13년)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마을 뒤의 독산성
과 더불어 역사가 오랜 마을이다.
■ 독성산(산)
독성산도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석대산, 향로봉, 독산 등으로 불렸다. 독성산은 산에 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석대산은 산에 세마대라는 장대가 있어서, 향로봉은 멀리서 보면 향로처럼 보여서,
그리고 독산은 인근에 높은 산이 없어 홀로 우뚝 솟은 산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지곶동의 뒷산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삼국시대 백제가 독산책을 세웠다는 기록과 독산성 안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
으로 보아 약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졌다고 본다.
■ 권율바위(바위)
독산성 동문과 남문 사이에 있는 바위이다. 권율장군이 독산성에서 왜군과 대치하여, 오산 청회(운
암) 들판을 포함한 오산지역 일대와 성책 바깥에 주둔한 왜적을 멀리 또는 가까이 내려다보며 지구전
을 펼칠 때 자주 올랐었다는 바위이다.
권율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