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9 - 오산시역사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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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초평동(楚坪洞)
초평동은 1789년(정조13년)에 발기된『수원부읍지』에는 초평면(楚坪面)이었으며,
1793년(정조17년)에 발간된 『수원부읍지』에도 같은 초평면이었으나, 1831년(순
조31년)에 발간된 『화성지』에서는 초평으로, 재부, 남거 40리로 범14동이 있었으
니, 수철리, 누읍리, 타종리, 마유동, 신촌, 모전촌, 용란리, 서촌, 여대리, 내창동,
어은굴리, 대화촌, 궁기리, 어인포 등이다. 그리고 1895년(고종32년)에 발기된『기
전 수원부읍지』에도 『화성지』와 마찬가지의 면이었으나, 4년 후인 1899년(광무3
년) 5월에 수원군의 군수인 이범선이 쓴 『수원군읍지』에는 초평면으로, 서촌·여대
리·누읍리·모전촌·궁기리·내창동·어은굴리·대화촌 등의 방리가 속했다. 당시의 수원
부읍의 지도에는 초평(草坪)으로 나와 혼동을 가져오고 있으니, 당시에는 쓰는 사람
에 따라 면의 명칭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1831년에 발간
된 『화성지』에서 궐리사가 초평면에 속했으며, 이런 사실은 1914년까지 계속되어
초평면의 지역이 오랫동안 현재의 신장동 일부까지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청호면·초평면·산성면·문시면 등의 4
개면이 성호면으로 통합되어 오늘날의 오산시가 탄생한 것이다. 초평면은 오산의
서부로 전원도시이며, 지금까지는 개발이 더디었지만 최근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 지역이다. 1989년 1월 1일 오산이 시로 승격되면서 옛 지명을 되찾아
초평동으로 시작한 농·공·주거지역이 공존하는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이상재충
신정려각이 있다.
★가수동(佳水洞)
옛날부터 물맛이 좋고 물이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냇물
이 맑고 깨끗하지는 않으나 예전에는 오산천의 물도 깨끗하고 아름다워 외지에서는
이곳을 물이 아름다운 마을 가수동이라 했다고 전한다. 가수동이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1789년(정조13년)에 초평면의 방리로 가사(加士)리란 지명으로 나오고, 1914
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시에는 샘골로 통합하여 가수동이 되어 성호면에 편입이
된다. 이런 사실로 보아 가수동의 어원적 변화는 가술→가숫골→가술리→가수동으
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가시미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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