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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지점 3호묘는 주구가 없는 목관묘로서 묘광이 등고선과 직교하며 토기와 철기는 머리뒤의 공간에
일괄로 부장되어 있었다. 이 분묘는 심발형토기와 단경호의 형식 및 직기형(直基形) 철모의 존재 등
을 기준으로 3세기 말인 원삼국시대 말기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수청동고분군의 원삼국시대 분묘는 극히 드물며 5지점까지의 전체 분묘 303기는 거의 모
두가 4~5세기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림 17. 수청동고분군 4-3호 출토 철기(1. 모, 2.집게, 3. 착, 4. 도자, 5·6. 촉, 7. 부, 8. 겸)
제4절 내삼미동유적 측구부탄요 4)
구릉의 북서사면에 위치하며 1237×381㎝ 규모의 세장방형이다. 우측으로 부터 전면작업장-연소
부-소성부-측면작업장-연도부의 구성이며 전면작업장에 재가 퇴적되어 있었다. 측구는 총 7개이
오산시사 고 너비는 18~63(평균 41)㎝이며 측구간벽은 평균 98㎝가 된다.
출토유물은 없었으며 고고지자기 측정결과는 A.D. 250~300년의 연대치를 보이고 있어 화성 기안
리제철유적의 탄요와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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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4) 高麗文化財硏究院, 2010 『烏山 內三美洞 遺蹟-오산시 세교지구 도로구간 내 유적 시발굴조사-』, 學術調査報告書 第51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