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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구역에서 주거지, 수혈, 분묘 및 탄요가 조사되었다. 주거지들은 구릉 정상부와 완만한 경사면 353
에서 모두 31기(큰 구릉인 A구역에서 24기, 작은 구릉인 B구역에서 7기)가 중복현상 없이 조사되었 역사
다. 이들 중 A구역 1호와 2호는 삼국시대 신라주거지이고 29기는 모두 삼국시대 백제주거지로 판단 / 유적
된다.
A구역의 백제주거지들은 대부분은 구릉 정상부와 남사면에 고르게 분포하고, 북사면의 상단부에 · 유물
일부 위치한다. 전체 31기 중 잔존 상태가 양호한 주거지는 정상부에 조성된 5기 정도에 불과하다.
주거지는 대부분 온돌시설(쪽구들)을 갖춘 것으로 확인되었다. 쪽구들은 벽과 잇대어 바닥보다 얕
게 단이 지도록 굴착한 후 아궁이와 고래만 추가로 굴착하여 조성하였다. 고래는 열효율 증대를 위해
양쪽이 엇갈리게 시설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그림 12)
A구역 동쪽 끝 부분의 화재로 폐기된 주거지들 내부에서는 철도, 철모, 철촉 등의 무기류가 다량
출토된 점이 주목된다.
백제주거지들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위치한 1·2호 신라주거지는 유사한 평면형태와 동일한 내
부구조를 보이고 있어 상호 근접한 시기에 조영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수혈 5기는 단면 플라스크형의 원형수혈로 되어 있고, A구역의 석곽묘와 석실묘는 토기로 보아 신
라의 한강진출 이후 지속적으로 조성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풍화암반토를 굴착하여 조성한 측구부 탄요는 잔존길이 820㎝, 잔존너비160㎝로서 연도부와 측면
작업면이 유실된 상태이다.
유적에서 확인된 백제주거지의 온돌은 기존의 전형적인 형태와는 달리 一段 높게 한 유단식이고
구들에 개자리가 발달한 점은 신라후기 온돌시설(본 유적의 1호, 2호 주거지)의 선행형식이어서 보고
자는 본 유적 백제 주거지의 조성시기를 5세기 후엽 또는 6세기 전엽으로 보고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 유적의 주거지 25기와 수혈 12기에서 출토된 유물들 가운데 토기류는 15종(심발형19, 파수부발
1, 장란형17, 장동호4, 고배19, 병4, 동이4, 시루5, 호(단경호)35, 직구단경호4, 직구호2, 광구장경호
9, 광구소호1, 대부배1, 대호 및 대옹13) 138점에 달하여 취락 내에서 다양한 토기들이 사용되고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5)
철기류는 주거지 13기에서 농공구(삽날1, 겸4, 부1, 도자4) 10점, 무기류(도2, 모3, 촉26+) 30여점 ,
기타(꺾쇠8, 가위1, 교구2) 11점 등 50여점에 달한다. 이러한 철기의 부장양상은 가구당 철제 농공구
뿐만이 아니라 철제 무기와 마구류도 소유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어서 당시 철기의 생산과 유
통을 이해하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외에 24호주거지에서 2점의 철재(鐵滓)가 출토되어 이 유적에서 철기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다만 그러한 철기제작에 이용되었던 단야(대장간)시설은 거의 대부분 지상
구조물이었기 때문에 유적에서 노의 형태가 확인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5) 철촉이 일괄로 출토된 경우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