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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 1 Who Will Get the Gold?

내밀면서 "나는 그대에게 신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왔노라"라고 말했다. 이에 아타우알파는
성서를 빼앗아 귀에 대보고는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이 잉카 황제의 불경스러움에 피사로는 분노를 터뜨렸다. 그는 황제의 팔을 잡아 가마에서 끌어
내렸다. 화승총과 말 등을 사용하여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던 스페인 병사들은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거의 비무장 상태였던 많은 수의 잉카인을 학살했다. 포로가 된 아타우알파는 피사로
에게 자기를 풀어주면 그 대가로 커다란 방을 황금으로 채워주겠다고 약속했다.

<잉카제국의 정복과 내분>

그러나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1532년 아타우알파를 화형에
처했다. 화형은 잉카인에게 가장 잔인한 처벌이었다. 잉카인은 육체가 없어지는 화장에 대해 극
도의 공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타우알파는 화형 대신 목이 잘린다는 조건으로 가톨릭으
로 개종하려고까지 했다. 피사로와 그 부하들이 쿠스코와 파차카막의 신전들을 거의 약탈하다시
피 해서 모은 황금과 은 공예품은 엄청났다. 총 11톤의 금 공예품은 모두 녹여서 1만 3,420파
운드의 순금으로 만들었고 2만 6,000파운드의 순은도 확보했다. 피사로는 이 전리품을 보병 1
인당 금 45파운드, 은 90파운드를 지급했고 기마병에게는 이것의 2배를 지급했다.

1533년, 피사로는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로 군대를 신속히 이동시켜서 잉카제국을 점령하고
1535년에는 리마를 건설했다. 그 후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아타우알파의 동생 망코 카팍을 꼭두
각시 황제로 내세웠다. 정복의 쾌감에 도취해 있던 스페인 정복자들 사이에서도 내분이 발생했다.
피사로는 그의 오랜 동료였던 알마그로와 서로 주도권을 놓고 싸웠다. 결국 알마그로는 피사로의
손에 죽었고, 피사로는 1541년에 다시 알마그로의 부하들에게 살해되었다.

잉카제국의 정복 후,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나는 이곳에 금을 찾으러 왔지 농부처럼 땅을 파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라고 한 피사로의 말처럼 엄청난 양의 금을 얻었다. 1492년부터 1600년까
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으로 옮겨진 금의 양은 총 75만 파운드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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