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26권 korus 8월호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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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더구나 그
                                                                                                                                                                                           건 죄악이거든.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다시 모든 것을 잃었으나 노인은 청새치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았다. 상
                                                                                                                                                                                           어에 대해 분노도 품지 않았고, 자신의 불운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깊은 잠에 빠진 노인은 아프리카 사자의 꿈
                                                                                                                                                                                           을 꾼다.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거
                                                                                                                                                                                           대한 청새치를 잡아 금의환향한 어부처럼.
              노인과 바다 의 무대인 쿠바의 작은 어촌마을 “꼬히마르”
                                                                                                                                                                                           나이가 들어가면 젊은 시절의 꿈을 포기하기 쉽지만 노인은 결코 포
                                                                                                                                                                                           기하지 않았다. 노인은 ‘어디엔가 틀림없이 있을’ 인생의 목표인 ‘큰 물
                                                                                                                                                                                           고기’를 잡기 위해 하늘의 새를 보며 위치를 예측하고 묵묵히 다시 도
                                                                                                                                                                                           전한다.

                                                                                                                                                                                           “놈이 선택한 것은 그 어떤 덫과 함정과 속임수도 미치지 못하는 먼 바
                                                                                                                                                                                           다의 깜깜하고 깊은 물속에 머무르자는 것이었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것은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놈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하는 그곳까지 가서 말이야. 이제 우린 서로 연결
                                                                                                                                                                                           된 거야. 어제 정오부터.”

                                                                                                                                                                                           노인이 잡은 5.5m의 700kg가량 되는 청새치는 상어의 공격을 받아
                                                                                                                                                                                           커다란 머리와 허옇게 드러난 등뼈 사이에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이 노인이 그토록 힘들게 잡은 성과였다. 그러나 노인은 불굴의 의
                                                                                                                                                                                           지를 비치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

             노인의 독백에서 84일 동안의 불운을 묵묵히 받아들이면서도 희망을                『노인과 바다』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마도 노인이 청새치를 잡                                 안소니 퀸이 주연한 영화 “노인과 바다”                             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읽을 수 있다. 저녁이 다가올 무렵, 노인은 드             은 다음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헤밍웨이는 노인이 대어를 낚은 성공담                                                                                    노인은 아직도 꿈꾸고 있다. 노인의 꿈은 젊음과 순수, 평화의 상징인
             디어 길이가 무려 5.5미터나 되는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다. 이처럼 큰             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았다. 대어를 잡아 항구로 향하던 노인은                                  노인은 손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상어에게 맞섰다. 단지 물고기를 지키              아프리카의 밀림을 헤매고 있었다. 이 소설의 제일 마지막 문장은 정
             청새치를 난생 처음 본 노인은 작은 배를 끌고 도망가려는 청새치와 밀              상어 떼를 만나 상어에게 고기를 다 떼어 먹히고 결국 앙상한 뼈만 남                                 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어부로서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              말 감동적이다.
             고 당기며 사투를 벌였다. 밤낮으로 싸우던 노인은 기진맥진해졌지만,               은 청새치를 가지고 돌아온다. 이러한 장면은 아마 헤밍웨이 자신의 처                                 림이었다. 그것은 평생을 보낸 바다 한가운데서, 업으로 삼은 고기잡
             나약해질 때마다 끊임없는 독백으로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지가 반영됐을 지도 모르겠다. 당시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저항이었고, 희망을 버리지 않               “노인은 사자 꿈을 꾸고 있었다(The old man was dreaming about
             “이보게, 늙은이, 자네나 두려워 말고 자신감을 갖게.”                     울리나』 이후 10여년이 넘게 이렇다 할 작품 없이 작가로서 긴 침체기                                는 성숙한 태도였다.                                        the lions).”
             “고통쯤이야 사내에겐 별거 아니지.”                                에 빠져 있었다. 그는 짧은 승리 이후 긴 패배가 이어지는 것이 인생임
             “난 견딜 수 있어. 아니, 반드시 견뎌내야 해.”                        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였다.
             마침내 사흘째 되던 날, 노인은 작살로 대어의 심장을 찔러 배에 붙잡아
             맸다. 평생에 걸쳐 가장 도전적인 작업에서 노인은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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